어서강의-소야전답서

소야전답서

박청춘1 2011. 3. 2. 11:57

인쇄하기

인쇄하기인쇄
제24회 소야전답서(僧谷殿答書)강의(2011.3월 법련) / '낭랑한 창제'로 '절대 승리의 길'을! | 어서(御書)강의
ㅅiㅂiㄷHㅁr왕 | 조회 17 | 2011/03/01 21:54:04

24회 이케다 SGI 회장 강의

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소야전답서(僧谷殿答書)

 

'낭랑한 창제’로 ‘절대 승리의 길’을!

 

[강의]

“법화경의 제목은 일체경(一切經)의 혼(), 일체경의 안목(眼目)이니라.”(어서 1060) 남묘호렌게쿄(

無妙法蓮華經)의 제목이 불교의 핵심입니다. 일체중생을 근저부터 구하는 중요한 민중불법입니다.

남묘호렌게쿄는 우주 근본 법이고 생명 근원의 리듬입니다. 우리 생명의 위광세력(威光勢力) 제목을 부름

로써 우리 몸에 부처의 생명이 용현(湧現)해 강해집니다.

깊은 신심을 분기해서 부르는 제목은 단 한번이라도 생명을 소생시키는 무한하고 광대한 공력(功力)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물며 신력(信力)’행력(行力)’을 다해서 열심히 창제하는 사람에게 큰 공덕(功德)이 나타나는가.

성훈에 비추어 틀림없이 무량무변한 복덕(福德)이 솟아나올 것입니다,

이번 회에는 제목이 지닌 깊은 뜻을 가르치신〈소야전답서(윤타왕어서)〉를 배독하겠습니다. 이 어서는 1279

8 17, 소야교신의 아들인 소야도소에게 주셨습니다. 몽고가 다시 습격해오리라고 단정하던 격동의

대에 생명력의 본원(本源)인 제목을 불러 넓히는 니치렌(日蓮) 일문(一門)’이 지닌 사명이 얼마나 위대 한가.

긍지를 가르치신 편지이기도 합니다.

 

본문 소야전답서 1060 4 ~ 8

제경(諸經)은 오미(五味), 법화경(法華經)은 오미의 주()라고 하는 법문은 본분(本分)의 법문이로다. 이 법문(法門)은 천태(天台)·묘락(妙樂)이 대략 쓰셨지만 분명하지 않으므로 학자의 아는 바가 적다. 이 석()에 약논교지(若論敎旨)라고 쓰여져 있음은, 법화경의   제목(題目)을 교지라고 쓰셨느니라. 개권(開權)이라고 함은 오자(五字) 중의 화()의 일자(一字)이며, 현원(顯遠)이라고 쓰여져 있음은 오자 중의 연()의 일자이고, 독득묘명(獨得妙名)이라고 쓰여져 있음은 묘()의 일자이니라. 의재어차(意在於此)라고 쓰여져  있음은, 법화경을 일대(一代)의 의()라고 함은 제목이라고 쓰셨느니라. 이것으로써 알지어다. 법화경의 제목은 일체경(一切)의 혼(), 일체경의 안목(眼目)이니라.

 

[현대어역]

제경은 오미, 법화경은 오미의 주이니라.”는 법문은 법화경 본문의 법문이다. 이 법문에 관해 천태대사와 묘락

대사가 대략 썼다고 하지만, 분명하지 않아서 알고 있는 학자가 적다. 묘락대사의 석()에 나오는 혹시 교지

를 논하면에서, 법화경의 제목을 교지라고 말했다. “법화는 개권현원을 가지고개권은 오자(五字)의 제목

()’의 일자(一字). ‘현원이라고 씌어 있음은 오자의 제목 중 ()’의 일자다. “홀로 묘()한 이름을

받음이라고 씌어 있음은 오자의 제목 중 ()’의 일자다. “마음은 여기에 있다.”라고 씌어 있음은, 법화경이

일대(一代)의 마음이라 함은 제목이라고 밝히셨다. 이것으로써 법화경의 제목은 일체경의 혼이고, 일체경의

안목이다.

 

법화경이 오미의 주()’

이 어서는 제목의 공력(功力)을 밝히기 위해 먼저, 법화경이 일체경의 정점에 있음을 나타내셨습니다.

니치렌대성인은 천태대사가 일체경의 승렬을 논하기 위해 사용한 오미(五味)’의 비유를 두가지로 해석하셨

습니다. 하나는, 제경을 오미로나누어 무량의경(無量義經)과 법화경과 열반경(涅槃經)이 최고의 제호미(醍醐

)에 해당한다는 해석이고, 또 하나는 법화경을 오미 중에서 최상인 제호미로 그치지 않고 오미의 주라고 더

욱 깊이 해석하셨습니다.

오미는 우유를 정제(精製)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다섯가지 맛입니다. 유미(乳味)에서 시작해 5단계로 정제해서

최고의 맛인 제호미에 이릅니다. 이 오미는 맛도 자양분도 약효도 다르지만, 모두 사람의 수명을 키웁니다.

에 반해 오미의 주는 오미로 인해 양성되는 수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미(五味)’ : 우유를 정제할 때 생기는 다섯가지 맛(유미, 낙미, 생소미, 숙소미, 제호미)을 말한다. 천태(

)의 교판(敎判)에서는 석존이 설법한 순서를 오미로 표현해서 법화, 열반시가 최고의 제호미에 해당한다고

했다.

 

법화경은 모든 중생을 성불시키는 최고의 역용(力用)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오미 중에서 제호미에 비유하셨습

니다. 이는 중생의 생명을 양성하는 공덕의 면을 가리킵니다. 이에 대해 법화경이 오미의 주라고 하면, 법화경

이 오미로 양성된 중생의 생명에 나타나는 불계(佛界)의 생명을 설하기 때문에 가장 뛰어난 경전이 됩니다.

그리고 법화경의 간심(肝心)인 남묘호렌게쿄 제목이 일체의 제불을 부처로 만든 ②능생(能生)의 근원법이고

불계의 생명입니다.

 

②능생(能生) : 온갖 것을 생기게 하는 근원, 거기서 생기는 일체를 소생(所生)이라고 한다.

 

어서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법화경의 제목은 팔만성교(八萬聖敎)의 간심이요 일체제불(一切諸佛)의 안목인데.”(어서 940) “수량품(壽量

)의 간심인 남표호렌게쿄야말로 시방삼세(十方三世)의 제불의 어머니시니라.”(어서 1212) “삼세시방의 부

처는 반드시 묘호렌게쿄의 오자(五字)를 종()으로 해서 부처가 되시었다.”(어서 1072) “남묘호렌게쿄라고

함은 일대(一代)의 간심일뿐더러 법화경의 심()이고 체()이고 구극(究極)이니라.”(어서1058)

참으로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은 일체제불의 안목’ ‘시방삼세의 제불의 어머니’ ‘일체경의 안목이고 일대의 간

’ ‘법화경의 간심’ ‘본문수량품의 간심’ ‘수량품의 간요(肝要)’이고, ‘불종(佛種)이며’ ‘대양약(大良藥)’이고 법체

(法體)’입니다.

말법에 남묘호렌게쿄를 처음으로 깨달으시고 홍통하신 분이 니치렌대성인입니다. 대성인은 남묘호렌게쿄를

수지(受持)한 묘법(妙法)의 당체(當體)로서, 불석신명(不惜身命)으로 말법만년의 광선유포를 위해 싸우고 모든

장마(障魔)에 승리하셨습니다. 어본존은 대성인의 부처의 생명을 한폭의 만다라(曼陀羅)로 도현(圖顯)하신 것

입니다.

우리는 니치렌대성인의 생명이며 제불의 안목인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을 이 어본존을 대경(對境)으로 삼아 부

름으로써 우리 가슴속에 남묘호렌게쿄를 불러일으켜 묘법의 생명을 우리 몸에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본존을 신수(信受)하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러서 받들면, 나의 몸 즉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본존,

연조성인(蓮祖聖人)이니라.”(관심의 본존초문단)입니다. 남묘호렌게쿄의제목은 우리가 ③무명(無明)의 어둠을

털어버리고 대성인과 똑같은 위대한 부처의 생명을 열어 나타낼 수 있는 궁극의 법입니다.

니치렌대성인은 부처의 자비와 지혜의 생명을 우리 몸에 나타내서 자타(自他)가 함께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행복경애를 구축할 수 있도록 민중구제의 요법(要法)제목의 신행(信行)’으로 확립하셨습니다.

 

③무명(無明) : 생명의 근본적 무지(無知). 궁극적인 진실을 밝힌 묘법을 믿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또 무지에서 생기는 어두운 충동.

 

법화경의 제목은 일체경의 안목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묘락대사의 석문(釋文)에 따라 법화경의 오미의 주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우선 법화경

교지(敎旨, 가르침의 취지)’ 다시 말해 가르침의 핵심이 묘호렌게쿄 오자의 제목에 있다고 밝히셨습니다.

묘락대사는 법화경에서 가장 중요한 법문은 개권(開權)’ ‘현원(顯遠)’이라고 말했습니다. 적문(迹門)개권현

(開權顯實, 권을 열어 실을 나타내다)’개근현원(開近顯遠, 근을 열어 원을 나타내다)’입니다.

 

: 이 어서에서 묘락대사의《지관보행전홍결(止觀輔行傳弘決)》 제2권에 있는 만일 교지(敎旨)를 논한다면

법화(法華)는 다만 개권현원(開權顯遠)으로 교()의 정주()로 한다. 혼자 묘()의 이름을 득하는 뜻이 여

기에 있느니라.”라는 한구절을 인용했다.

 

개권현실은 방편(方便, )인 이전경에서 가르친 뜻과 한계를 명확하게 해서, 진실인 일불승(一佛乘) 증 일체

중생을 성불시키는 묘법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전권교(爾前權敎)가 방편()이라는 가장 큰 이유는 십계(十界)

의 차별, 특히 구계(九界)와 불계(佛界)의 차별을 설한 것에 있습니다. 그런데 법화경의 적문(迹門)에서는 이승

작불(二乘作佛), 악인성불(惡人成佛), 여인성불(女人成佛) 등을 설하고, 부처의 지혜와 공덕을 구계의 생명에

나타낼 수 있다고 설합니다. 십계 차별이라는 방편을 없애고, 중생의 생명을 ⑤십계호구(十界互具)라는 진실

에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개권(권을 열다)’입니다.

 

⑤십계호구(十界互具) : 지옥계에서 십계까지, 십계의 각계가 서로 십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

 

대성인은 이 개권은 묘호렌게쿄의 오자 중에 ()’의 일자에 해당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렌게연화(

)’의 이자(二字)를 성불(成佛)의 인과(因果)에 맞추면 는 인(), ‘()’은 과()에 해당합니다. 구계중생

(九界衆生)의 생명에 대한 방편을 털어내는 개권에 해당합니다.

다음에 개근현원은 이전(爾前)·적문(迹門)에서 석존은 금세에 처음으로 성불했다고 했으나, 법화경 본문 수량

품에서 사실은 그렇지 않고 구원(久遠)의 과거세에 성불한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부처라는 진실을 밝혔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진실한 불과(佛果)인 구원실성의 부처는 구원 옛날에 성도(成道)하고도 구계의 생명을 끊지 않

, 구계의 각종 모습을 나타내며 중생을 구하는 영원한 부처입니다. 이 진실한 불과를 밝힌 것이 현원(구원을

나타낸다)’이므로 묘호렌게쿄의 오자 중 에 해당합니다.

이와 같이 제목의 오자에서 렌게의 이자(二字)는 버화경에서 가장 중요한 개권현원의 법문을 나타냅니

. 그리고 중생의 생명이 십계호구·⑥인과구시(因果俱時)()’를 몸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중생의 생명에 ⑦묘리(妙理)·묘용(妙用)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제목의 오자 맨앞에 자를 붙입니다. 요컨대

중생의 생명이 바로 묘호(妙法)의 당체라는 사실을 밝힌 법화경 전체의 교지는 묘호렌게쿄의 오자에 모두 들

어있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은 이렇게 법화경의 뜻을 이해했을 때, ‘묘호렌게쿄의 오자가 법화경의 핵심일 뿐 아니라 일대

(一代)의 의()’ 즉 석존일대 가르침의 핵심, 불교의 근본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상과 같이 법화경은 십계호구·인과구시의 묘리·묘용의 당체로서 종생생명의 진실을 밝히셨습니다.

법화경을 오미의 주라고 위치를 부여한 까닭은 오미로 인해 자라는 중생의 생명이 진실의 전체(全體像, 십계

호구·인과구시의 묘리·묘용의 당체)를 밝히는 경전이기 때문입니다.

법화경의 제목은 단수니 한 경전의 제명(題名)이 아닙니다. 우리 생명이 갖추고 있는 묘리·묘용을 표현하고 있

으며, 만인성불(萬人成佛)을 위해 각종 가르침을 설한 부처의 ()’에 해당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대성인은

일체경의 혼이고 일체경의 안목이라고 결론내리셨습니다.

 

⑥인과구시(因果俱時) : 불도수행을 하는 인()의 처지인 구계(九界)와 성불의 경지(境地)를 얻는 과()의처

지인 불계(佛界)가 하나의 생명에 동시에 갖추어진 것. 법화경은 만인이 본래 불성(佛性)을 갖추고 있으며 즉시

열 수 있다고 설했고, 십계호구를 밝혔으며 인과구시의 묘법을 나타냈다.

 

⑦묘리(妙理)·묘용(妙用) : 묘리는 불가사의한 법리(法理)를 말하고 일체중생이 구비하고 있는 십계호구, 일념

삼천의 이()를 말한다. 묘용은 불가사의한 작용을 말하고, 만인(萬人)을 성불시키는 묘법의 심원한 공덕력을

말한다.

 

본문 소야전답서 1061 17 ~ 1062 2

그때에 마명보살(馬鳴菩薩), 삼세시방(三世十方)의 부처에게 기청(祈請)하여 말씀하였더니, 당장에 백조(白鳥)가 출래(出來)했으며, 백마(白馬)는 백조를 보고 한 마디 울었다.

대왕(大王), 말의 울음소리를 한 마디 들으시고 눈을 뜨시고, 백조가 두마리 내지(乃至) 백천(百千)이 나왔기 때문에 백천의 백마가 일시(一時)에 기뻐하며 울었느니라. 대왕(大王)의 색()이 나아짐이 일식(日蝕)이 본시(本是)로 되돌아감과 같고, 몸의 힘과 마음의 계략(計略)이 전전(前前)보다는 백천만배(百千萬倍) 더하였다. 왕후(王后)도 기뻐하고   대신(大臣) 공경(公卿)도 기운이 솟고, 만민(萬民)도 합장(合掌)하고 타국(他國)도 머리를 조아렸다고 쓰여 있느니라.

 

[현대어역]

(대왕에게 명을 받고) 마명보살이 삼세시방의 부처에게 기청하여 말씀드렸더니, 당장에 백조가 날아왔다. 백마

는 백조를 보고 한 마디 울었다. 대왕은 백마의 울음소리를 한 마디 듣고 눈을 뜨셨다. 백조가 두마리, 백마리,

천마리 나타나니 백천의 백마도 기뻐해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대와의 몸 색이 본디처럼 나아지는 모습은 일식

이 본디로 되돌아가는 현상과 같았다. 그리고 몸의 힘과마음의 작용도 이전보다 백천만배나 좋아졌다. 왕후도

기뻐하고 대신이나 공경도 용기가 솟아나고 사람들도 합창하고 다른 나라도 머리를 조아리고 따랐다고 한다.

 

근원의 생명력을 환기시키는 창제소리

제목은 우리 생명은 본디 부처의 위대한 생명이다.’ 라는 환희찬 선언입니다. 그리고 그대의 생명도 본디 부처

의 위대한 생명이다.’라고 깨닫게 하는 외침입니다. 이렇게 묘호렌게쿄의 제목이 소용돌이치고 일체를 감싸안

으면 십계 모든 중생에게 위광세력이 더해지고 안온한 사회를 실현합니다.

대성인은 그 예로서 윤타왕과 백마의 고사(故事)를 드셨는데, 성훈에 따라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옛날에 윤타왕이라는 현왕(賢王)이 있었는데, 이 왕은 백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기 생명력을 높이고 위

광세력을 더했습니다. 이로 인해 나라가 번영하고 백성들도 안락해졌으며 기후도 순조로워졌고 주위 나라에서

도 존경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백마는 백조를 보고 우는데, 어느 날 백조가 다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백마가

울지 않았고, 대왕을 비롯해 사람들의 생명력이 약해졌으며 기후도 순조롭지 못했고, 기아와 역병이 일어났으

며 외국에서 침략하기 시작했습니다.

외도(外道)를 믿는 자들이 기원했으나 백조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마명보살이 나타나서 삼세시방의

부처에게 기원했더니 당장 백조가 나타나서 백마가 기뻐하며 울었습니다. 예전처럼 백천만배의 힘이 넘쳐 윤

타왕은 회복하고 백성들도 활기를 되찾았고 나라도 안온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성인은 제목의 뜻을 이 고사를 통해 알기 쉽게 설하셨습니다. 이 어서 끝단에 백마는 니치렌이니라. 백조는

우리의 일문(一門)이니라. 백마가 우는 것은 우리의 남묘호렌게쿄의 소리이니라.”(어서 1065)고 말씀하고,

다른 어서에서도 백조는 법화경과 같고 백마는 니치렌과 같도다. 남묘호렌게쿄는 백마가 우는 것과 같고”(

14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백마의 울음을 재촉하는 백조에 관한 해석은 약간 다르지만, 어느 것이든 법화경 행자가 부르는 창제소리가 일

체중생의 근본적인 생명력, 즉 부처의 위대한 생명과 불성(佛性)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원리를 밝히셨습니다.

예를 들어, 백마의 울음소리를 들은 대왕은 색은 태양과 같이 빛나고, 살결은 달과 같이 선명하며, 힘은 대력

(大力)의 나라연천(那羅延天, 금강력사〈金剛力士〉)과 같이 강하고, 지혜는 범천왕(梵天王)과 같이 풍부해졌

.”(어서 1424, 취의)고 있습니다. 더구나 윤타왕은 전전보다는 백천만배 더하였다.”라고 말씀하셨듯이 전

보다 몸의 힘, 마음의 작용이 백천만배나 좋아졌습니다.

우리의 낭랑한 창제소리는 범천왕·제석을 비롯한 제천선신에게 위광세력을 주고 수호작용을 강하게 해 반드시

활성화합니다. 또 사회와 국토에 모든 부처와 보살이 활발히 움직이고 조화해서 가치창조 작용이 넘쳐 흐릅니

.

성불사(聲佛事)를 함”(어서 708)입니다. 약한 백마의 울음소리로는 윤타왕도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로

말하자면 창제행(唱題行)을 할 때 언제나 더욱 강한 신()’ ‘좀더 깊은 행()’을 일으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확신과 지속이 창제의 핵심입니다.

자타(自他)의 무명(無明)을 타파하고 일체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불성의 위력을 나타내는 힘은 신력(信力)

행력(行力)이 넘치는 우리의 창제에 있습니다. 그리고 자타 함께 환희찬 세계가 넓혀지고 불계(佛界)라는 안심

과 활력이 넘치는 세계가 나타납니다.

 

상쾌한 창제를 마음껏!

창제의 기본자세에 관해, 비유이기는 하지만 백마의 울음소리에는 대단히 중요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백마가 대초원을 경쾌하고 씩씩하게 질주하듯 상쾌하고 낭랑한 창제가 중요합니다.

창제할 때는 있는 그대로의 마음’ ‘순수한 마음으로 기원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고민할 때도 있고 괴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자식이 어머니 품에 뛰어가서 안기듯이 어본존에게 생명 그대로 부딪치면

됩니다.

도다 선생님은 자주 형식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어본존에게 진심으로 부딪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

. 창제행은 대성인의 생명을 내 몸에 나타내는 수행이라며 대성인의 생명이 담긴 제목을이라고 지도하셨

습니다.

비록 후회하는 일이 있어도 두번 다시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결의로 미래를 향해 새로이 출발하는 창제를,

부를 정할 때는 반드시 이긴다는 용기 있고 강력한 창제를, ⑧삼장사마(三障四魔)와 싸울 때는 마를 단호히 타

파하는 사자왕(師子王)과 같은 창제를, 숙명전환할 때는 결코 지지 않는다는 불퇴(不退)의 창제를, 기뿔 때는

깊이 감사하는 창제를, 어서 말씀대로 고락(苦樂) 함께 아울러 생각하여”(어서 1143)라고 오직 제목을 봉창

해야 합니다.

생명을 연마하는 방법은 창제행밖에 없습니다. ‘창제제일(唱題第一)’의 사람은 무명(無明)으로 흐려진 생명도

깨끗이 닦여 반드시 법성(法性)을 지닌 명경(明鏡)의 생명이 될 수 있습니다. 제목은 생명을 연마하는 작업이므

마음만이 중요”(어서 1192)

 

⑧삼장사마(三障四魔) : 불도수행을 방해하는 세가지 장애와 네가지 마를 말한다. 삼장은 번뇌장(煩惱障), 업장

(業障), 보장(報障)을 말하며, 사마는 번뇌마(煩惱魔), 음마(陰魔), 사마(死魔), 천자마(天子魔)를 말한다.

 

따라서 제목의 공덕은 양()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찰 때까지 부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서에 이만

큼 제목을 부르라고 양을 정하신 말씀은 없습니다. 기원은 견고한 마음이고 신심의 후박(厚薄)이며

으로 결정 됩니다.

, 본인이 결의해서 목표량을 정하는 것은 신심의 표현입니다. 자기가 결의한 만큼 창제하며 끊임없이 깊이

결의해야 합니다.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어서 384)라고 말씀하셨듯이 끊임

없이 창제행을 지속한 사람이 반드시 승리합니다.

자신의 생명변혁을 잊고, 굳은 일념이 없는 의존이나 도피, 겁쟁이의 마음으로 현실생활의 노력이나 도전을

포기하고, ‘덩굴째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신앙은 불법(佛法)의 본의(本義)에서 어긋 납니다.

창제행은 우리 생명을 변혁하는 인간혁명의 수행입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일념을 깊이 해서 제천선신을 움

직이고 절대승리를 실현하는 서원(誓願)의 제목이 대성인불법의 창제행입니다.

일제중생, 남묘호렘게쿄라고 부르는 이외의 유락(遊樂)은 없느니라.”(어서 1143)는 말씀대로 제목에는 매우

깊고 고아대한 생명변혁의 공덕이 있습니다.

우리 창가학회 회원은 그 최고의 즐거움을 불교 역사상 가장 깊게 자각하고 만끽했습니다. 최고의 불도수행이

고 환희의 원천이 되는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을 부르는 일이 얼마나 복덕이 넘치는가. 이보다 깊은 생명의 기쁨

은 없습니다.

윤타왕과 백마, 백조의 고사는 생명력의 근본을 여는 가르침이며, 동시에 제목에는 사회에 근본적인 활력을 주

는 힘이 있다는 것도 나타냈습니다.

여기에 입정안국(立正安國)’의 원리가 있습니다. 이 어서 후반의 어문을 통해 제목과 입정안국의 관계를 살펴

보겠습니다.

 

본문 소야전답서 1064 14 ~ 18

삼독(三毒)이 강성(强盛)한 일국(一國)이 어찌하여 안온(安穩)하겠느뇨. 괴겁(壞劫)의 때는 대()의 삼재(三災)가 일어나니, 소위(所謂) 화재(火災)·수재(水災)·풍재(風災)이니라. 감겁(減劫)의 때는 소()의 삼재가 일어나니, 소위 기갈(飢渴)·역병(疫病)·합전(合戰)이니라. 기갈은 대탐(大貪)에서 일어나고 역병은 우치(愚癡)에서 일어나고 합전은 진(瞋恚)에서 일어남이라.

지금 일본국(日本國)의 사람들 사십구억구만사천팔백이십팔인(四十九億九萬四千八百二十八人)의 남녀(男女) 사람마다 다르지만 다같이 하나의 삼독(三毒)이니라. 소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경()으로 하여 일어나는 삼독이기에, 사람마다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을 일시(一時)에 매리()하고 책()하고 유배(流配)하여 없앰이니라. 이는 즉 소의 삼재의 시초(始初)로다.

 

[현대어역]

삼독이 강성한 나라가 어찌 안온하겠는가. 괴겁의 때는 ()의 삼재(三災)’가 일어난다. 소위 화재, 수재, 풍재

. 또 감겁의 때는 ()의 삼재가 일어난다. 소위 기근, 역병, 전쟁이다. 기근은 큰 탐욕에서 일어나고, 역병

은 우치에서 일어나며, 전쟁은 진에 때문에 일어난다.

지금 일본국 사람들은 사백구십수만사천팔백이십팔명이고, 그 남녀는 사람마다 다른 존재이지만 모두 똑 같은

원인으로 삼독에 빠졌다. 소위 남묘호렌게쿄가 연()이 되어 일어난 삼독이므로 사람마다 석가, 다보, 시방의

제불을 동시에 욕하고 책망하고 유배해 없애려 했다. 이것은 즉 기근, 역병, 전쟁이라는 소의 삼재가 시작한

것이다.

 

삼독강성으로 인한 삼재의 격화

대성인은 생명력이 쇠퇴하는 ⑨감겁(減劫) 시대에는 기갈(기근), 역병, 전쟁의 삼재가 일어난다고 말하고, 탁한

생명인 탐, , 치의 삼독과 재해(삼재)와 밀접하게 관계한다고 설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근은 큰 탐욕에

일어나고, 역병은 우치에서 일어나고, 전쟁은 진에에서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천대대상의 《법화문구(法華文句)》에도 진에는 늘고 격렬해져서 도장(刀杖, 전쟁)이 일어나고, 탐욕이 늘고

렬해져 기아(飢餓)가 일어나고, 우치가 늘어 격렬해져 질역(疾疫, 역병)이 일어난다.”고 같은 내용이 씌어

있습니다.

 

⑨감겁(減劫) : 인간의 수명이 줄어드는 세월, 겁은 헤아리기 어려운 길고 먼 시간의 단위, 불교에서는 성주괴

(成主壞空)의 사겁(四劫)중 주겁(住劫)은 인간의 수명이 줄어드는 시기(감겁)와 늘어나는 시기(증감)가 반복

한다고 설했다.

 

그리고 천태는 삼독 때문에 삼재가 일어나면 생명의 삼독은 더욱 격렬해지고, 그 악순환 때문에 시대가 탁해지

고 쇠퇴하는 것이 겁탁(劫濁, 시대가 탁해지는 것)의 양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대집경(大集經)에서도 삼재 중 기갈(기근, 기아)’에 관해 곡귀(穀貴, 곡물의 등귀〈騰貴〉)’라고 설했습니다.

렇게 재해가 일어나는 까닭은 삼독 중에서 탐욕이 인간생명에서 격렬해져 결국에는 사회를 지배하기 때문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경전(經典)에서 설한 예인데, 큰 농사를 짓는 유력자가 자기 이익만 생각해서, 기상이 불순할 때 문자

그대로 아전인수(我田引水)하는 등 탐욕에 빠지면, 많은 농민은 수확이 격감하고 곡물을 비롯한 모든 물가가

오릅니다.

이런 인간의 탐욕 때문에 참혹한 재화가 닥쳐오는 구조는 경전의 시대에서 멀리 떨어진 현대에도 남아 있습니

. 오히려 그 규모는 지구 전체에 확대되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약자인 민중은 기근과 빈

곤과 격차 등 경제적 위기에 가장 큰 고통을 받습니다.

다음에 역병(질역)’은 삼독 중 우치(무지, 어리석음)’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유행하는 병이 있고, 또 알고 있어도 적절한 치료방법을 찾지 못해서 유행하는 병도 있습니다.

그 중에는 원인을 알아도 경제적, 문화적 이유로 적절한 치료를 강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혹은 눈앞의 이익에

빠져, 전체가 손을 잡고 대처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처사로 역병의 피해를 만들 수 도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은 삼독 중 진에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진에는 자기 뜻에 맞지 않는 데 대한 격렬하고 깊은 분

노 때문에 마음을 풀 길이 없는 불만입니다.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고, 차별 받으며, 배신당하고, 상처를 입으며

짓밟혔다고 마음속 깊이 느끼고 우글거리는 진에는 큰 파괴력을 축적합니다.

이 파괴력이 폭발하면 폭력, 무력으로 나타나서 전란(戰亂)으로 이어집니다. 경제적 대립, 사상적 대립, 종교적

대립 그리고 국가적 대립 등의 형태가 되어 증오를 폭발시켜, 현대에서 전쟁과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니치렌대성인은 당시의 삼재는, 남묘호렌게쿄에 적대하는 삼독으로 인해 일본 중생의 생명이 깊이 탁해졌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일본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신앙이 불의(佛意)를 밝힌 법화경에 대한 비방(誹謗)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모르

는 종교적인 무지(無知, 우치)에 빠졌습니다.

또 대성인의 절복 덕분에 자기가 법화경을 비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히려 사법(邪法)에 강력히 집

착하는 종교적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도 많았습니다. 또 일체중생을 구하기 위해 남묘 호렌게쿄를 설해 넓히는

법화경 행자이신 대성인을 오히려 자기를 공격하는 적으로 삼고 강력히 증오하는 종교적인 진에를 일으킵니

.

그때는 삼재가 끊임없이 일어나던 시대였습니다. 남묘호렌게쿄는 오직 생명력의근본이고 불종(佛種)입니다.

대성인은 일본 중생이 이 묘법에 위배해서 생기는 격렬한 탐진치의 삼독에 빠졌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난다

고 갈파하셨습니다.

 

본문 소야전답서 1065 1 ~ 5

그런데 니치렌(日蓮)의 동류(同類)는 어떠한 과거(過去)의 숙습(宿習)에 의()하여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의 단나(檀那)가 되셨음인가. 이로써 생각할지어다. 지금 범천(梵天)·제석(帝釋)·일월(日月)·사천(四天)·천조태신(天照太神)·팔번대보살(八幡大菩薩)·일본국(日本國)의 삼천일백삼십이사(三千一百三十二社)의 대소(大小)의 신기(神祇)는 과거(過去)의 윤타왕(輪陀王)과 같으며, 백마(白馬)는 니치렌이니라 백조(白鳥)는 우리의 일문(一門)이니라. 백마가 우는 것은 우리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소리 이니라. 이 소리를 들으시는 범천·제석·일월·사천 등이 어찌하여 색()을 더하고 빛을 왕성하게 하시지 않겠느뇨, 어찌하여 우리를 수호(守護)하지 않겠느뇨 하고 굳게 굳게 생각할지어다.

 

[현대어역]

이런 중에 니치렌의 일문은 과거에 어떤 숙습(생명에 새겨진 업()의 영향)으로 법화경 제목의 단나가 되었을

. 이 일로 생각하면 지금 범천, 제석, 일월, 사천왕 그리고 천조태신, 팔번대보살, 일본국의 삼천백삼십이사의

대소의 신들은 과거의 윤타왕과 같다. 백마는 니치렌, 백조는 우리의 일일문이다. 백마의 울음은 우리의 남묘호

렌게쿄 소리다. 이 창제소리를 들은 범천, 제석, 일월, 사천왕 등이 색()을 더하고 위광을 강하게 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 어찌하여 우리를 수호하지 않겠는가 하고 굳게 굳게 생각하세요.

 

창제는 입정안국의 원동력

당시 일본은 방법(謗法)이라는 종교적인 전도(轉倒)로 인해서 삼독과 삼재의 악순환이 일어나고, 망국, 망민의

위기에 빠졌는데 이를 구하기 위해 대성인은 오미(五味)의 주()’이고 생명력의 근원인 남묘호렌게쿄를 부르

고 넓히라고 역설하셨습니다.

여기서 앞서 말씀하신 윤타왕의 고사(故事)를 다시 언급하셨습니다. 백조의 도움을 받은 백마의 울음이 윤타왕

을 소생시키고 민중과 국토에 활력을 주었둣이, 대성인 일문의 창제소리가 제천선신의 위광세력을 더하고,

수호작용을 반드시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력의 근본인 남묘호렌게쿄를 확신하고 부르며 넓히는 사람은 망국, 망민이라는 큰 위기에 처한 시대일지

라도 생명과 우주가 갖춘 근본적인 생명력을 불러 일으켜서 위기시대의 변혁자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백마, 백조에 비유하신 우리의 일문은 남묘호렌게쿄라는 변혁의 근본적인 힘을 몸에 나타내어 민중구

제를 위해 일어서신 니치렌대성인을 스승으로 해, 대성인과 똑같이 강한 확신으로 스스로 남묘호렌게쿄를 부

르고 남에게 전하는 변혁자의 모임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는 말법(末法)의 법화경 행자의 사명은 말법에 더욱 격해지는 삼독의 병과우리

가 부르는 남묘호렌게쿄의 대양약(大良藥)중 어느 쪽이 이기는가 하는 승부를 담당하는 일입니다.

결국은 승부를 결정해 버리는 이외는 이 재난이 그치기 어려우리라.”(어서 998)는 말씀과 똑같습니다.

난세(亂世)일수록 사제일체(師弟一體)가 되어 부르는 남묘호렌게쿄의 창제소리가 각자의 숙명을 타파하고 사

회의 어두운 구름을 뚫고 입정안국을 실현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제목은 숙명전환하는 근원입니다. 아무리 강한 숙명의 쇠사슬도 우리 생명력을 불러 나타내는 제목의 묘용(

)으로 단절할 수 있습니다.

제목은 인간혁명의 원천입니다. 본디 생명이 갖추고 있는 부처의 생명을 제목으로 불러 나타내서 씩씩한 생명

력을 만끽할 때 환희중의 대환희라는 경애를 열 수 있습니다.

제목은 입정안국의 원동력입니다. 제목으로 내 생명에 열린 환희의 파동은 순간적으로 전 우주에 넓혀집니다.

그래서 일체중생의 환희찬 파동을 불러일으켜서 우리 가정과 지역 그리고 국토가 환희에 싸입니다.

사제서원(師弟誓願)의 제목을 불러 광선유포에 끝까지 사는 사람에게 두려운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루하

루 낭랑한 창제로 자신감과 활력에 넘치는 절대승리의 대도(大道)를 위풍당당하게 걸어갑시다.

 

                                                                                2011년 법련 3월호, 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다음 호에는 〈감겁어서〉(1465 ~ 1467) 강의가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