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4

4편

박청춘1 2011. 2. 2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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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시험 교재 (생사일대사혈맥초 강의, 제4회 묘호렌게쿄 생사) | 중급 ★★★
一淸 | 조회 81 | 2011/01/13 14:39:09

제4회 묘호렌게쿄의 생사
전 인류를 불계로 포용하는 자비와 희망의 생사관
  
[강의]
불법(佛法)은 인간의 '생사(生死)의 고뇌'를 해결하는 방도를 명확히 설한 가르침입니다.
법화경은 그 생사의 진수(眞髓)를 설해 밝힌 경전(經典)이며, 특히 법화경 중 수량품에 설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법화경의 진수를 말법에 전개하신 니치렌 대성인은 고뇌의 근본 원인인 무명(無明)을 제거하여 모든 사람이 삼세 영원히 행복한 경애를 체득(體得)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불법이 해결해야 할 마직막 문제는 죽음[死]입니다."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이 불법의 위대한 예지(叡智)는 생사문제를 해결할 근본의 방도를 밝히고 인류의 경애를 높이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이번에도 <생사일대사혈맥초>를 배독하며 인류를 구제할 대법(大法)인 불법의 깊은 뜻을 배웁시다.
 
//생명의 무한한 가능성을 밝힌 '생사 이법'//
이 어서는 왜 묘호렌게쿄가 '생사일대사의 법'인지 그 깊은 뜻을 간결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이 깊은 뜻을 배견하기 위해 지난번 강의에서는 '생사'와 '묘법'의 관계를 설명하신 어서를 근본으로 '본유(本有)의 생사(生死)'에 대해 고찰했습니다. 즉 '생사 이법(二法)'은 우주 근원의 '묘법' 자체에 본래 구비되어 있으며, 생과 사의 상(相)을 나타내는 십계의 중생이 모두 묘법의 당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것은 현실세계의 중생이 고민하는 생사는 본래의 생사가 아니고, 영원한 묘법의 리듬 자체의 생사가 본래의 생사라는 뜻입니다. 법화경 수량품에서는 이것을 여래가 여실지견(如實知見)한 깨달음의 내용으로 설합니다.
부처의 눈으로 보면 본래 십계의 모든 중생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묘법의 당체인 중생에게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미혹이나 고뇌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처는 지견(知見)하셨습니다.
그러나 범부는 대부분 십계 중에 육도윤회(六道輪廻)할 뿐이고, 사성(四聖)의 경지(境地)를 멀리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참된 생사의 고뇌를 극복할 수 있는 불계는 아득한 저편의 이상향(理想鄕)에 지나지 않으며 꿈속의 꿈일 뿐입니다.
 
//생명변혁의 가능성을 나타낸 당체연화//
이 어서에서는 십계 중생의 생사에 대한 뜻을 더욱 깊이 밝히기 위해 '당체연화(當體蓮華)'를 말씀하셨습니다.
'당체연화'는 십계의 모든 중생이 묘법의 당체라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 중생의 몸[身]이 십계호구의 당체이고, 그 몸에 불계를 나타낼 수 있음을 밝힌 법리(法理)입니다.
'연화'는 인과구시(因果俱時), 이를테면 지금 이 순간의 생명은 원인과 결과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결국 십계호구를 말하며, 지금 십계 중 어떤 일계의 모습을 나타내지만, 다음 순간에 십계의 또 다른 계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순간적인 생명에 성불의 인(因)인 구계도 과(果)인 불계도 동시에 갖춰진 것을 비유합니다.
이 당체연화의 관점에서 보면 생사를 반복하는 생명 자체는 본래 선도 악도 아닙니다. 연(緣)에 따라 미혹의 상태 혹은 깨달음의 상태가 됩니다. 십계에서 말하면 지옥계에서 불계까지 모든 경애를 체현(體現)하는 것이 생명 본연의 모습입니다.
 
//일념전환을 설한 인과구시//
대성인은 "의보(依報) * 정보(正報)에 나타나는 인과는 모두 연화(蓮華)의 법(法)이다."라는 천태대사의 석(釋)을 인용하여 당체연화의 의의를 더욱 상세히 설하셨습니다.
여기서 '의보 * 정보'는 생과 사의 상(相)을 나타내는 생명활동 자체를 말합니다. 의보[환경]와 정보[생명 주체]에 걸친 생명활동의 연관성은 현대에 와서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의보나 정보에서도 또 의보와 정보 간에서도 각종 인과현상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묘법에 구비된 생사 이법(二法)이 틀림업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정(依正)의 각종 인과현상도 그 본질은 인과구시의 '연화의 법'에 따라서 일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보와 정보가 인과구시의 '연화의 법'이라는 것은 실천적 의미로 본다면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일념을 전환함으로써 자신의 의보도 정보도 순식간에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종래의 불교에서는 과거세의 업인(業因)에 따른 과보(果報) 때문에 속박당했더라도 자기 자신의 역겁수행(歷劫修行)한 결과로 미래에 새로운 정보(正報)를 받음으로써 변할 수 있다고 설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내 일념에 따라 정보가 순식간에 바뀐다는 것은 그 몸 그대로 생명이 변혁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정보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의보(依報)도 반드시 바뀝니다.
'연화의 법', 즉 '인과구시의 묘법'은 생명이 본래부터 지닌 무한한 잠재적 기능성을 열고 삼세에 걸쳐 자유자재로운 경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만물의 생사 * 변화는 '묘호렌게쿄의 생사'//
이상, '묘법'과 '연화'를 살펴봄으로써 '묘호렌게쿄'가 중생의 생사에 대해 깊은 뜻을 나타내는 대법(大法)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여기서 대성인은 결론적으로 모든 생사의 변화는 '묘호렌게쿄의 생사'임을 나타내셨습니다.
먼저 "생사(生死) 이법(二法)은 일심(一心)의 묘용(妙用)이요, 유무(有無)의 이도(二道)는 본각(本覺)의 진덕(眞德)" (어서 1336쪽)이라는 전교대사의 석(釋)은 인용하셨습니다.
이것이 모든 변화가 인과구시의 묘법이라는 근본적인 일법(一法)이 만든 변화임을 명백히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심의 묘용'이란 '일념삼천의 법리'라고 설명하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일심', '일념'의 변혁이 경애를 크게 바꾸고 세계를 엽니다. 그것은 생명 자체가 십계호구이므로, 삼천제법(三千諸法)으로 열어 변혁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대성인은 "천지 * 음양 * 일월 * 오성 * 지옥 내지 불과, 생사 이법이 아님이 없느니라." (어서 1336쪽)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심법계(一心法界) * 일념삼천이므로 '천지 * 음양 * 일월 * 오성'이라는 의보도 생사를 나타내는 묘법의 당체이고, '지옥 내지 불과'라는 십계의 의정(依正)도 묘법의 당체입니다. 이 '천지 * 음양 * 일월 * 오성'은 중국의 음양도(陰陽道)를 기본으로 한 우주관 * 세계관을, '지옥 내지 불과'는 인도 이래의 불교 우주관 * 세계관을 표현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니치렌 대성인 재세 당시의 우주관은 음양도와 천태종의 경전주석(經典注釋) 등을 통해서 중국의 전통 철학인 음양오행 사상을 근거로 포착하는 방법이 널리 유포되어 있었습니다. 이 어문은 그것을 토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대성인은 천지도, 그 기본인 음양도, 일월도, 오행(五行: 목 * 화 * 토 * 금 * 수의 다섯 원소)도 결국 묘호렌게쿄의 생사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만물의 생사는 "생사의 이법이 아님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듯이 묘호렌게쿄이 생사입니다.
우리의 생명도 의정과 함께 묘호렌게쿄의 당체이고, 만물도 묘호렌게쿄의 당체입니다. 그러므로 천태대사는 "만물의 생기(生起)도 그 본성(本性)인 법성(法性)에 의한 생이다. 또 만물의 소멸(消滅)도 법성에 의한 소멸이다."라고 풀이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법성은 만물의 본성이고, 그 실체는 다름 아닌 묘호렌게쿄입니다.

  

//석가와 다보 이불(二佛)도 생사이법//
이어서 "석가 다보의 이불(二佛)도 생사 이법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허공회(虛空會)의 보탑(寶塔)에 나란히 앉은 석가와 다보 이불은 묘호렌게쿄가 갖춘 불계를 나타낸 존재입니다. 우리 범부와 똑같이 묘법의 당체이고 생사를 나타내는 존재입니다. 석가불은 법화경 본문(本門)에서 설한 교주 석존입니다. 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의 구원 이래, 현실 사바세계에 상주하여 묘법의 설하는 부처입니다.
법화경 수량품에서는 석존이 구원에 성불한 이래, 상주불멸(常住不滅)하는 부처로서 중생을 성불하는 길로 인도하려고 능숙한 방편으로 열반(涅槃)의 상(相)을 나타냈다고 밝혔습니다. 방편현열반(方便現涅槃)입니다.
이것은 부처의 생명 당체가 근본적으로 영원한 묘법이면서 현상적인 면에서는 '생에서 사'로 양상을 전환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한편 다보불은 아득한 옛날에 성불해서 입멸한 고불(古佛)입니다. 법화경을 설법하는 회좌에 나타나서 법화경이 진실이라고 증명했습니다. 이것은 묘법의 당체가 '사에서 생'으로 전환하는 양상을 상징합니다.
어느 것이나 묘법을 가르쳐 나타내기 위한 생사입니다.
그러기 위해 묘법의 당체인 생명이 본래 갖춘 생사를 이용하므로 석가와 다보 이불의 생사는 참으로 '묘법의 생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계의 생사//
모든 생사는 '묘호렌게쿄의 생사'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사후(死後)이 생명은 대우주에 융화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대우주의 생명 자체가 십계호구의 생명입니다. 대우주에 지옥도 아귀도 있으며 불계도 있습니다.  우리도 또한 대우주의 지옥계, 아귀계, 보살계 그리고 불계 등, 각각의 경계에 융화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의 생명은 융화해도 본디 우주의 생명 그 자체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어느 의미에서 우주는 생명의 바다입니다. 우주의 바다는 시시각각 변화를 일으키고 항상 움직이며 변하면서 '생'과 '사'의 리듬을 연주합니다.

지난번 강의 때 확인했듯이 일차원적인 비유에서 말하면, 우리 개개의 생명은 우주라는 대해에 생겨난 '물마루'와 같습니다.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 우리 개개의 생명의 '생(生)'. 또 바다와 하나가 되면 우리 생명의 '사(死)'입니다. 우주에 융화한 사후의 생명은 바다의 큰 물결과 같으며 결코 한 곳에 뭉쳐 있지 않습니다. 우주의 생사 리듬에 맞추어 우주에 편만하여 움직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그것이 연에 따라 우주 속에서 가장 어울리는 색심(色心)과 환경을 선택해서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계(佛界)의 생사(生死)는 자유자재로 자기가 태어나고 싶은 곳에, 태어나고 싶을 때, 태어나고 싶은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묘호렌게쿄의 생사'입니다. 그러므로 '묘호렌게쿄의 생사'에서는 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광대하고 자비의 행업(行業)에 넘치는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 '불계의 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주의 자비와 생명력을 몸으로 나타내고, 발랄하게 활동하며 부처와 똑같이 행동, 즉 사람을 존경하고 만인을 구제하는 행동을 무상(無上)의 기쁨으로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살아 있을 때는 생명 속에 광대한 불계를 나타내고 그 생명력으로 이 세상의 사명을 완수합니다. 南無妙法蓮華經의 창제가 가슴속에 광대한 불계를 열기 위한 근본적 실천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우주의 불계에 융화하여 영원한 생명을 깊이 음미하고 즐깁니다. 이 불계의 생사가 바로 '생도 환희, 사도 환희'라는 무상의 생사입니다.

대성인께서는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에서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상상품(上上品)이 적광(寂光)의 왕생(往生)을 이루어 수유간(須臾間)에 구계생사의 꿈속에 돌아와서, 몸을 시방법계의 국토에 편만하고, 마음을 일체유정의 신중(身中)에 넣어서 내(內)로 부터는 권발(勸發)하고 외(外)로부터는 인도(引導)하여 내외상응하고 인연화합하여 자재신통의 자비의 힘을 베풀어 널리 중생을 이익케 함에 막힘 없을지어다." (어서 574쪽)
<통해> "최고의 성불을 이루고 순식간에 구계생사의 꿈속으로 돌아와서 몸은 시방법계의 국토에 골고루 미치게 하고 마음을 모든 유정의 몸속에 넣어서 안으로는 불도의 마음을 일으키고 밖으로는 불도에 들게 인도하고, 내외가 서로 호응하여 인(내인(內因))과 연(외인(外因))을 화합케하여 자유자재로 탁월한 자비의 힘을 베풀어 널리 중생을 이익케 하는 것에 막힘이 없을 것이다."
이 말씀대로 사람을 구제하려고 태어나기를 원하는 생명은 '자유롭게' '막힘 없이' 바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현실을 떠나 다른 곳에 이상적인 세계가 있어, 죽은 후에 그 세계에 영주하기를 원하는 생사관은 이 현실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혁할 수 없습니다. 이상세계가 '본(本)'이면 현실세계는 '적(迹)'이고 '임시'의 세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妙法蓮華經의 생사'야말로 현실세계를 자유자재로 유희하면서 힘차게 변혁하는 희망의 생사관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알면 인류의 경애를 높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근본적인 민중구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를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전 인류에게 부처의 경애, 즉 최고의 인격 가치를 나타내게 한다면 세계는 전쟁도 없고 기근도 없습니다. 질병도 없고 빈곤도 없습니다. 전 인류를 부처로 하고 전 인류의 인격을 최고로 가치로 만드는 것이 '여래(如來)의 사(事)'를 행하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 지용의 보살이 출현하고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 '묘법의 생사'에 각성하면, 일찍이 없었던 생사관의 혁명이 진척하여 무명(無明)의 사고(四苦)에 미혹해 온 인류의 숙명전환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진정한 생사관을 세계의 사조(思潮)로 하고, 인류의 경애를 변혁하기 위해 21세기를 본격적으로 개막하는 창가(創價)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