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에서는 '일심의 묘용(妙用)'을 설한다. '마음의 불가사의한 작용'이라는 의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눈에 보이는 '모습'이 되어 나타난다. 그 것이 인생이다. 어느 여학교의 동창회 - 30년 만의 재회였다. 동창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사람이 친구에게 말했다. "젊었을 때 아주 미인이었던 사람보다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던 사람이 오늘은 훨씬 아름답게 보였어. 어째서일까." 그 여성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내용이 아니었을까. - 젊었을 적부터 미인이란고 불렸던 사람은 특별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젊었을 때일 뿐으로 이윽고 '마음가짐'의 차이나 걸어온 인생이 나이가 들면서 얼굴에 나타나고 만다고. 분명 그러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노(일본의 전통 가면극)'의 진수를 썼다고 하는 세아미의 《화전서》에서는 <한때의 꽃> (젊었을 때의 아름다움, 때와 더불어 시든다)와 <참된 꽃>(철저하게 단련된 수련에 의한 아름다움, 때와 더불어 빛난다>의 차이를 설하고 있다. 자신을 끊임없이 연마한 사람만이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는 '참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근대심리학의 문을 연 미국의 윌리엄 제임스. 그가 발견한 요점은 "인간은 마음가짐을 바꿈으로써 그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일점에 있었다고 한다. 또한 불전에도「마음은 솜씨 좋은 화사(畵師)가 종종(種種)의 오음을 만드는 것 같이 일체세간(一切世間)중에 마음에서 만들지 않음이 없다」- '마음'은 뛰어난 화가가 자유자재로 여러 가지 모습을 그리는 것가 같이 세상의 온갖 현상으로서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이 없다 - 는 글이다. 자기의 '마음'이나 '일념'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자신의 미래, 인생 그자체가 만들어져 간다. 그것은 '자신이 믿고 생각한 방향대로 현실도 움직여 간다'는 '신념의 힘' '사고의 힘'이다. "참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생을 연극으로 비유한다면 자신이야말로 자기 인생이라는 연극의 '각본가'며 '주인공'인 것이다. 신(神)이나 우연 등의 다른 어떤 것이 각본을 써 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써서 자신이 배우로서 연기한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전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어느 남자아이는 어릴 적 사고로 한쪽 다리가 짧아졌다. 그러나 부모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넌 할 수 없다"든가 "네겐 무리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라도 다른 아이와 똑같이 시켰으며 스포츠도 시켰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고 하면 네가 하기 전에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그것은 정신주의나 관념론이 아니라 인간의 잠재능력에 대한 확신이다. 그 아이는 학창시절에는 뛰어난 축구선수가 되었으며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한다. 만약 부모로부터 언제나 "어쩔 수 없는 애"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면 그 아이도 그렇게 생가하여 진짜로 '어쩔 수 없는 애'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 '불가능 하다' '안 된다' 는 일념이 참으로 모든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도 또한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을 갖고 가난했던 소년시절부터 몸을 일으켜 거액의 부를 쌓았다. 그리고 '번 돈은 사회로 환원한다'는 것을 신조로 삼아 생애 막대한 기부를 도서관이나 교육 등을 위해 진력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한 그의 승리의 열쇠는 '밝은 성격'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 '밝은 성격'은 재산보다도 더욱 존귀하며 스스로 양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햇살이 비치는 장소로 나오지 않겠는가. 할 수 있다면 힘든 일도 웃으면서 날려 버리자"(철강왕 카네기)라고. 언제나 마음을 '태양'으로 향하게 하여 살아가자. 힘든 일도 웃으면서 날려 보내자 - 그러한 적극적이고 명랑한 일념이 인생을 바꿔 간다. 성공과 승리를 가져다 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크게 승리한 사람은 조건이 좋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은 대개 "만약 내게 저것이 있었다면" "만약 내게 이런 문제가 없었다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불평이 아닐까. 곤란함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느 실업가가 언제나 "문제가 알고 있는 장소에는 '1만 명이나 있는데도 누구 한 사람 문제를 껴안은 사람도 없고 괴로워하는 사람도 없다'는 장소가 있네. 소개해 줄까?" 친구가 "꼭 부탁한다"고 답한다. 그런데 친구를 끌고 간 곳은 - 묘지었다고 한다. 인간은 살아가는 한은 반드시 '고뇌'가 있고 '과제'가 있는 법이다. 그 고뇌와 과제를 '어떻게' 극복하는가. 단 하나, 스스로의 도전에 의해서만 그것은 극복된다. 오히려 기쁨이나 즐거움으로도 바꿀 수도 있다. 요컨대 자기 자신에게 승리하는 것 이외에 만족도 행복도 없는 것이다.
아무튼 '나의 인생을 열기' 위해 '나의 경애를 여는' 것이다. 인간, 언제까지나 자기 일만을 생각한다면 차츰 '작은 마음' '작은 자아'로 굳어지고 만다. 세상을 위해 타인을 위해서라는 열린 큰 목적을 향해 일해 간다면 그 '일심의 묘용'에 의해 '큰 마음' 큰 자아'가 구축되어 간다. '큰 마음'은 즉 '큰 행복'을 맛볼 수 있는 마음일 것이다. 그렇게 도면 '작은 마음'으로는 중압으로 느껴졌던 고뇌도 가볍게 느껴지고 유유하게 내려다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작은 마음'에서 '큰 마음'으로 - . 자기다운 꽃을 피워 나는 승리했다, 최고로 만족했다는 인생을 보내주기 바란다.
어머니의 시 (48 - 5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