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ㅡ 생(生)도 환희, 사(死)도 환희
조문부ㅡ 국립제주대학교 명예교수
국립제주대학교 前총장
'생(生)도 환희, 사(死)도 환희'라는 생명관은 1993년 9월 23일, 이케다(池田) SGI 회장이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연한 명제적 개념이다.
'사(死)는 생과 병행해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는 불가결한 요소'로써,
'사를 배제할 것이 아니라, 사를 응시(凝視)하고 바르게 자리매김하는 생명관, 생사관의 확립이야말로
21세기 최대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불교에서 설하는 '법성(法性)의 기멸(起滅)'을 인용, '법성이 연을 따라 기멸의 유전(流轉)을
반복하는 것'이라 하여, '사란 인간이 다음생을 위한 충전(充電) 기간과 같은 것으로,
결코 기피할 것이 아닌 생과 같은 은혜며 즐거움'이라고 했다.
사람이 '생을 환희'라고 생각하고 누구나 즐겁게 '산다'면 모를까,
즐겁게 '죽는다'거나 '죽음이 즐겁다'고 한다면,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고령자에게도
서글픈 일이겠지만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절망감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인류사회 전체로 본다면,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인간의 종말은
곧 차세대 탄생과 연이어 유전하는 것이기에 환희에 넘친다 할 것이다.
또한 인간이 무한한 수명을 가진 생명체가 아니라 유한한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에
그 종말은 생명이 생성될 때부터 예정되고 성장과 더불어 다가오며, 차세대 출생과 무관하게
도래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개개인의 인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유한한 생명체이기에 생명을 최대한 연장하려 하고,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서는 그 대신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을 남기려 한다.
그 가치는 윤회설(輪回說)에서 말하는 가치가 되겠지만, 어쨌든 인간은
사후에 보다 높은 평가를 받아 인류사에 그 이름을 길이 남기려 한다.
그러나 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 생명이 무상하게 생멸하기도 하고,
오히려 해악을 남기는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그 의사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는 인류사회나 대자연의 법칙에 가치 있게 공헌하는 경우도 있다.
즉, 인간은 자기 생명을 최대한 연장하려 하고, 생애에서 자신과 그 생활환경에 보다 값진
가치를 부여하려 한다.
그러나 생명 연장의 유한함을 알기 때문에 생애 중 최대한의 가치를 창조해
훌륭한 족적을 남김으로써 생명연장을 대신하려 한다.
그래서 가치 있는 인생의 여부를 좌우하는 요인이 '내적 의지냐, 외적 상황이냐'하는 문제에서,
내적 요소가 중요시 된다는 데에 인생의 의미가 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이고자 하고, 생의 가치를 자부(自負)하며 생동할 때
심리적 만족과 희열(喜悅)을 느낀다. 이 가치를 얻고 실현하게 될 때까지는
심적 방황과 한없는 고뇌(苦惱)와 고통이 따른다.
그 결과 얻게 되는 지고(至高)한 생의 가치는 '사'를 초월하는 활력을 생성케 하고
환희와 감동을 느끼게 한다. 그러기에 인간의 생명력은 인간의 가치여하에 따라
그 성쇠(盛衰)가 결정되며, 인간의 가치는 생명력의 원천이 된다.
따라서 가치 있는 생을 살면 그 종말도 가치 있는 인생으로, 또한 가치 있는 죽음으로 평가되기에
'생도 환희, 사도 환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사관을 상기하는 것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나도 그러한 인생을 살고 싶기 때문이랄까.
연구실에서 며칠씩 밤을 새우는 탐구(探究) 속에서, 또 IMF 시기에 대학총장으로서 직분을 다하며
보람차고 환희 넘치는 순직을 바라기도 했다.
앞으로 남은 또 하나의 바람은 의과대 학생들에게 해부학 재료로 기증한 내 유해가
그들의 꿈을 키우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면 하는 것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아쉬움 많은 내 인생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을지,
사후에 환희의 꿈을 바라며 감히 희망을 가져본다.
해돋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용기다. 어서(御書)의 근간도 용기다.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니치렌의 제자들은 겁쟁이로서는 할 수 없느니라" (어서 1282쪽)라고 말씀하신다.
도다(戶田) 선생님은 자주 말씀하셨다.
"우리 범부가 자비를 끄집어 내려고 해도 좀처럼 끄집어 낼 수 없습니다.
그 자비를 대신하는 것이 바로 용기입니다."
정의를 위한 용기야말로 대선(大善)에 통한다.
그 용기를 지닌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
권력자가 훌륭한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인이 훌륭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문화를 위해 평화를 위해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용기 있게 행동하는 사람이 훌륭하다.
따라서 광포에 끝까지 사는 학회원이 가장 소중한 존재다.
여러분의 정의로운 투쟁을 대성인이 찬탄하신다.
세계 양식이 그 올바름을 증명하고 있다.
보브나르그는 말한다.
"무사태평은 정신의 혼미함이다."
광선유포를 향해 동지가 진지하게 투쟁할 때 무사태평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간부가 있다면 호되게 꾸짖어도 된다.
'졸지 마라' '눈을 떠라'라고.
간부는 어디까지나 일개 졸병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은 특별하다'고 착각하는 사람, 노고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있다면
열심히 투쟁하는 동지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