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일념삼천과 성불의 대법③ 사의 일념삼천

박청춘1 2010. 4. 21. 17:20

 

 신입회원 초급강좌 - 일념삼천과 성불의 대법③ 사의 일념삼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나타내기 위한 ‘어본존’ 
  

부처는 우주대 경애를 체현

 

-. 지난 회에는 우리 생명에 우주대의 가능성이 갖추어졌다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지닌 무한대의 가능성을 끌어내어 한사람 한사람에게 근본적인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 니치렌(日蓮) 대성인 불법(佛法)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보십시오. 부처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인생의 불행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결코 방치하지 않고, 또 방치할 수 없는 그런 경애를 열어 나타낸 사람이 아닐까요.

우주대라고도 할 수 있는 광대한 경애를 열기 때문에 부처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의 인생의 고뇌, 괴로움, 미혹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모든 것이 ‘나의 일’입니다.

 

-. 순간 순간의 생명에 이른바 전우주가 담겨 있다. 이런 일념삼천의 법리를 부처는 자신의 몸으로 체현하는 것이군요.

 

대성인 불법에서 우선 중요한 것은 이런 우주대 경애가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도 갖추어졌다고 밝힌 것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결국 만법(萬法)은 기심(己心)에 담겨져서 일진(一塵)도 궐여함이 없고 구산(九山), 팔해(八海)도 자신에게 갖추어지고 일월, 중성도 기심에 있느니라”(어서 1473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산도, 바다도, 태양도, 달도, 별도 모두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우주대 경애를 열고 민중 한사람 한사람의 경애변혁을 지향하며, 또 민중의 행복실현을 위한 사회변혁을 지향하며 생애 행동을 지속한 분이 말법의 어본불이신 니치렌 대성인입니다. 이렇듯 대성인이 우리와 똑같은 범부의 몸으로 부처의 경애를 열었던 것에 중대한 의의가 있습니다.

 

즉시 불계를 나타내다

성불하기 위한 근원의 법

 

-. 어떤 의미입니까.

 

말법에 사는 우리도 반드시 일생 동안에 부처의 경애, 즉 우주대 경애를 열 수 있다는 것은 대성인이 자신의 모습을 통해 증명하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획기적입니다.

왜냐하면 만인 성불을 설해 밝힌 유일한 경전이 법화경이지만 여기서 거론된 석존이라는 부처의 모습은 아직도 말법 우리에게는 멀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법화경에는 만인성불 원리가 분명히 설해져 있습니다. 또 <여래수량품> 제16에서 구원실성이 밝혀지고 석존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성불의 모습이 밝혀졌습니다. 지옥계부터 보살계까지 구계의 생명을 구족한 채, 현실 구계의 세계에서 영원히 민중구제에 사는 진실한 부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말법의 사람들이 성불의 결과인 구원실성의 석존을 보고 즉시 자신에게 내재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석존 성불 근본원인이 된 법을 범부가 어떻게 수행하면 좋을까를 법화경에는 확실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니치렌 대성인께서는 구원실성의 석존을 성불케한 근원의 법 그 자체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법을 신수해 범부가 즉시 부처의 경애를 자신의 흉중에 열어 나타내는 길을 확립해주셨습니다.

 

일념삼천 실천은

현실변혁 위한 도전

 

-. 그것을 니치렌 대성인께서 처음으로 말법의 전 민중에게 증명하신 것이군요.

 

예. 그 부분이 중요합니다. 대성인은 대난과 싸우고 장마를 타파하는 행동으로 구계의 범부 몸에 불계가 용현한다는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바꿔 말하면, 십계호구·일념삼천이라는 만인에게 꼭 들어맞는 보편의 진리를 그 몸에 체현하셨습니다.

이처럼 대성인의 생명에는 실제로 일념삼천의 묘법(妙法)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은 그 생명을 남묘호렌게쿄 어본존으로 나타내셨습니다.

 

-. 누구나 부처의 경애를 열 수 있도록 대성인은 어본존을 나타내신 것이군요.

 

물론입니다. 이 ‘사(事)의 일념삼천의 어본존’이야말로 일념삼천론의 결론입니다.

모든 사람의 행복, 다시 말해 광선유포를 하겠다는 결의를 갖고 어본존을 배알할 때 우리 누구라도 불계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계를 근본으로 현실이라는 ‘구계’에서 고뇌와 불행으로 뒤덮인 ‘현실’을 철저하게 변혁해 만인 행복경애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게 됩니다. 그런  현실변혁을 위한 꾸준한 도전은 일념삼천의 실천 그 자체입니다.

 

학회 지도에서

 

‘사(事)의 일념삼천의 어본존’을 신심해 우리 구계의 중생도 남묘호렌게쿄의 빛에 비추어진 제법실상의 생명활동이 됩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십계의 중생은 남김없이 제법실상의 부처”(어서 830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옥계라면 지옥계, 인계라면 인계, 그 몸 그대로 모습으로 실상 즉, 묘호렌게쿄의 당체로 빛날 수 있습니다.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 특별한 자신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괴로워한다면 괴로워하는, 기뻐한다면 기뻐하는 그 모습 그대로 순수하게 어본존을 신심하고 광선유포를 위해 행동한다면 반드시 ‘제법실상의 부처’가 됩니다. 자신만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으로 일념삼천 자유자재의 역용을 생활에서, 인생에서 표현할 수 있는 자신이 됩니다.

<‘법화경 방편품  수량품강의 ①’>

 

- 화광신문 : 10/02/26, 865호 -

 

출처 : 교학 모임 (한국SGI 회원 전용)
글쓴이 : 一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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