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의 인간찬가-재즈와 인생과 불법(佛法)을 말한다
제6회 생명의 환희에 눈뜨다
인생은 인간혁명(人間革命)을 위해 존재한다!
<대담자>
이케다다이사쿠 SGI 회장
웨인 쇼터 색소폰 연주가
허비 행콕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 (이하 행콕)
이케다 선생님은 소설 '인간혁명'과 '신 인간혁명'을 6000회나 연재하셨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날마다 전 세계 벗의 마음에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아낌없이 발신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웨힌 쇼터 (이하 쇼터)
세계의 동지들과 함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실은 저도 청년시절부터 '인간혁명'이라는 제목을 마음에 새겨 두었습니다. 예전에 입회하기 전의 일이지만, 일본에 연주하러 갔을 때 호텔에 비치된 서가에서 가장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던 책이 '휴먼 레벌루션'(영문판<인간혁명>)이었습니다.
그때는 '한자 쓰는 법'이라는 책이 당장 필요했기에 꺼내 들었지만, '인간혁명'이라는 제목은 왠지 모르게 기억에 깊이 남아습니다. 아주 선명하게 인상에 남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케다 SGI 회장(이하 이케다)
불법(佛法) 철리에 바탕을 둔 '인간혁명'을 제창하신 분은 은사이신 도다 조세이 선생님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군국주의와 싸우다 2년 동안 투옥되셨습니다. 그 대난을 극복하고 '인간혁명'이라는 철학을 확립하셨습니다.
역사상 청년을 희생시키고 민중을 실망시킨 혁명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러나 '인간혁명'은 한사람 한사람이 자타(自他) 함께 생명존엄에 눈뜨고 모든 사람이 행복승리의 드라마를 장식하는 혁명입니다.
지금 '인간혁명'이 21세기 세계의 확고한 사조(思潮)가 된 것은 제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기쁨입니다.
두분을 비롯해 '수퍼사운드' 여러분이 뉴욕에서 재즈의 극치를 보여준 편곡으로 '인간혁명의 노래'를 연주한 일도 그립습니다. (1996년 6월, 세계청년평화문화제). '인간혁명'은 예술이나 인생을 하루 또 하루 다시 태어난 듯한 생명의 숨결로 새롭게 창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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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터
일반적으로 우리 남성들은 30대에 자신의 틀에 박히기 쉽다고 합니다. 오만불손해서 다른 사람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특히 생활태도나 인생관이 아를 경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완고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자기류의 생활 태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지요.
하지만 저는 마흔살이 되기 직전에 이 불법을 만나 많은 것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가 바위에 쇠사슬로 묶였듯이 어느새 교묘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속박이라는 쇠사슬에 묶여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열고 '인간혁명' 하기 위해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케다
30대, 40대에 성장이 멈춰버리느냐 마느냐가 큰 분기점입니다. 그러한 때에 자기의 인생에 더욱 가속페달을 밟고 상승시키는 힘이 신심입니다.
니치렌대성인은 문하 일동에게 "권위를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이번에 생사(生死)의 결박(結縛)을 끊어버리고, 불과(佛果)를 이루도록 하시라"(어서 177)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인간혁명'을 할 수 있는 보검을 바로 '두려움 없는 용기'입니다. 쇠사슬을 잘라내는 용기입니다. 올해는 폴란드가 낳은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탄생 200주년을 맞았습니다. 쇼팽은 시련에 고통 받는 조국의 민중을 위해 음악을 무기로 싸운 문화의 영웅입니다. 현재 일본 각지에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폴란드의 지보(至寶)'전 (도쿄후지미술관 기획*협력)에서도 쇼팽의 친필 문서 등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쇼팽은 여섯, 일곱살 때분터 이미 피아노에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행콕 씨도 비슷한 나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지요.
행콕
일곱살 생일 때 어머니에게서 피아노 선물을 받고 나서 몇 개월 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947년은 이케다 선생님이 열아홉살의 나이에 불법을 만나 신앙을 시작하신 해였지요. 형과 누나와 함께 셋이서 다 같이 피아노 개인교습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형과 누나는 몇 년 후에 그만두었고 저만 계속 개인교습을 받았습니다. 악기를 선택할 때도 제가 피아노를 선택했다기보다 피아노가 저를 선택했다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피아노를 계속 치게 된 큰 동기는 피아노 연주라면 형한테도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형제들이나 형, 누나의 친구들보다 연주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연주에 통달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쇼터
어릴 때 피아노보다 밖에 다른 아이들과 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요?
행콕
물론 있었지요. 한동안은 꾀가 나서 연습을 게을리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허비, 괜찮니? 개인교습이 싫다면 이제 그만하게 해줄게. 그게 아니라 계속하고 싶다면 열심히 연습하거라. 전부 너 하기에 달렸단다."
그때 저는 연습이 하기 싫어서 어머니에게 "좋아요, 관둘래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래, 알겠다"라며 개인교습을 중단시켰지요. 그런데 1년쯤 지났을 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피아노 다시 한번 배우게 해주세요! 열심히 연습할게요"라고 간청했습니다. 개인교습이 없는 날들이 못 견디게 허전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다시 한번 기회를 주어 개인교습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자신을 '조율'해서 태도를 완전히 고쳤습니다.
이케다
어머니가 '배우고 싶다' '통달하고 싶다'는 행콕 씨의 내발적 힘이 깨어나도록 인내 강하게 흐름을 만들어주셨군요. 행콕 씨나 쇼터 씨 모두 위대한 인간교육을 실행한 어머니의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행콕
예. 어머니는 제게 클래식 음악을 개인교습 받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 개인교습에서는 제일 처음에 몸을 상하지 않으면서도 힘차고 보다 정확하게 손가락을 사용하도록 피아노 앞에 앉는 올바른 자세, 두 손을 바르게 두는 법 등을 배웠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등이나 목, 손가락이나 팔에 문제가 생기는 음악가도 있지만 저는 소년시절부터 기초 지도를 잘 받은 덕분에 그러한 문제로 고민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클래식 음악의 기초를 쌓음으로써 악곡 중의 긴강감을 고조하거나 완화하는 법, 음악을 장식하는 많은 중요한 특성에 대한 감각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는 사항입니다.
어머니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어머니가 제게 클래식 음악을 교육받을 수 있게 결단하신 덕분에 실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케다
'어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기본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간이 크게 날아오르기 위한 양 날개라고 해도 좋겠지요. 부모님의 애정과 형제의 격려 덕분에 행콕 씨가 일찍부터 재능을 꽃피워 열한살 때 '시카고교향악단'과 협연했던 일화도 아주 유명합니다.
행콕
당시 시카고에는 '젊은의 콘서트 시리즈'라는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악기마다 각각 오디션을 봐서 입상자에게 '시카고교향안단'과 함께 연주하는 기회를 주었지요. 이 콘테스트에서 입상했지만 교향악단과 연주하는 당일은 몹시 긴장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시카고의 '오케스트라홀'(시카고 심포니센터)이라는 큰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이니까요. 아직 조그마한 어린 소년이던 저는 발이 피아노 페달에 간신히 닿았습니다. 연주한 곡목은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제26번 '대관식'의 제1악장이었습니다.
이케다
모차르트라고 하면 민주음악협회 음악박물관에 행콕 씨가 기증한 피아노와 함께 모차르트가 애용했던 고전 피아노와 같은 모델의 '안톤 발터'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나와 흉금을 터놓은 대화를 나눴던 브라질의 대시인이자 인권의 투사기도 한 티아고 데 메로 씨도 자신을 분기시킬 때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그런 모차르트가 현란한 기교에만 집착하는 음악가를 "일개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엄하게 단정 지은 일화는 매우 유명하지요. 기교를 넘어 감동을 전하는 불가사의한 힘은 같은 악기,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의 어떠한 혼의 올림이 담겨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행콕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색소폰 연주자가 단지 악기를 연주하고 있고 우리는 단순히 그 연주를 듣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웨인 쇼터가 색소폰을 연주할 때 우리는 단순히 색소폰 소리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웨인의 혼이 담긴 울림을 듣는 것입니다. 색소폰은 어디까지나 웨인의 혼이 담긴 울림을 듣는 매개체가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색소폰 소리를 듣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연주자가 악기를 초월할 때, 그 악기는 연주의 혼이 담긴 소리를 냅니다.
쇼터
감사합니다! 색소폰을 발명한 아돌프 삭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발명한 이 색소폰은 인간의 소리, 바이올린의 소리 그리고 금관악기와 목관악기가 전부 녹아들어 복합적인 소리를 냅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이 악기에는 오케스트라의 모든 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색소폰은 단순히 인간의 소리를 흉내낼 뿐 아니라 다양한 소리를 복합적이고 다방면적입니다. 그 음색은 미래의 메시지를 실어오는 듯합니다. 색소폰은 어떤 종류의 신비스러운 의미에서 제 친구입니다.
저는 연주할 때 색소폰과 융합되어 하나가 됩니다. 이는 인간이 타인과 서로 아는 사이가 되어 발전하면 친구 사이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케다
큰 의미가 함축된 말입니다. 불법에는 '경지(境智)의 이법(二法)'이라는 법문이 있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며 '경(境)'은 외부에 있는 모든 대상. '지(智)'는 대상의 본질을 비추는 인간 자신의 지혜입니다. 이 '경'과 '지'가 하나가 된다고 설한 내용입니다. 그 법문을 지금 하신 이야기로 바꾸어 말하면 색소폰이 '경'이고 그 색소폰에서 천상의 음색을 자아내는 쇼터 씨의 마음은 '지'입니다. 쇼터 씨의 완성된 마음이 색소폰이라는 악기의 심원한 샘과 융합해서 마르지 않는 소리를 흘러 통하게 만든다고도 할 수 있겠군요.
행콕
웨인의 색소폰에서는 때로는 호른의 소리를 비롯해 첼로의 소리, 바이올린의 소리가 들리고, 때로는 오케스트라 전체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듣는 사람이 색소폰에서 웨인의 마음을 듣고 느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궁극적인 악기연주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악기와 연주자가 악기에서 만들어지는 표현과 분리되지 않고 전부 혼연일체가 됩니다.
이케다
'마음을 듣는다'는 말은 좋은 표현입니다. 청중도 또한 연주자가 지닌 마음의 깊이를 들으면서 마음을 심화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고전(예기)에도 "음악은 덕(德)의 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정려한 음악의 울림에서 위대한 인간성을 개화를 발견했습니다.
쇼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재즈연주에서는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면과 단순한 이야기를 다양하고 다채로운 형태로 표현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재즈를 통해 음악을 표현하는 법칙을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생의 법칙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보다 강하게 피부로 실감할 수 있습니다. 모던 재즈의 연주는 보다 '인간적'으로 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합니다.
모던 재즈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찰리 파커의 색소폰 연주를 들었을 때,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 음색은 마치 수많은 작은 새가 자유를 찾아 새장을 부수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듯한 소리였습니다. 그래서 파커의 발명은 '새'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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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묘법의 음률이 지닌 힘을 새에 비유한 어서 한 구절이 생각나는군요.
"비유컨대 새장 속의 새가 울면 하늘을 나는 새가 불리어서 모이는 것과 같고, 하늘을 나는 새가 모이면 새장 속의 새도 나가려고 함과 같으니라. 입으로 묘법을 봉창하면 나의 몸의 불성(佛性)도 불리어서 반드시 나타나시고 범왕(梵王)*제석(帝釋)의 불성은 불리어서 우리를 지키고 불보살(佛菩薩)의 불성은 불리어서 기뻐하심이라."(어서 557쪽) 묘법의 음성은 자기의 내적인 존귀한 생명을 해방함과 아울러 우주에 편재하는 모든 선성(善性)을 해방시키는 울림입니다. 민중이 서로 생명을 향상시키며 살아가는 기쁨의 연대를 현실사회에 전파하는 운동이 바로 광선유포의 문화운동입니다. 묘법의 음악가에게는 그 선두에 나서서 생명존엄의 묘음(妙音)을 연주할 위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그 모범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행콕
고맙습니다. 선생님에게 이러한 평가를 들으면 무엇보다도 용기가 납니다. 저희는 세계의 예술부 동지들과 함께 생명존엄을 지키는 문화활동에 힘써 가겠습니다.
이케다
브라질의 저명한 피아니스트로 청년부에게 음악지도를 해주신 아마랄 비에이라 씨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납니다. 손가락으로 건반을 치는 요령 등 '기량면의 향상'과 아울러 피아노를 치는 사람의 '정신면의 성장'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또 '도'에서 '시'까지 일곱 음계에 관해 "하나하나 올라가는 음계는 마치 한 인간이 온갖 경험을 거치면서 인생의 고갯길을 오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행콕 씨가 연주한는 피아노도 한정된 건반에서 자유자재로 천상의 멜로디가 생겨나고 생명의 불가상의한 리듬이 울려 퍼집니다. 음악은 그야말로 '생명의 대화'라고도 할 수 있지요.
행콕
피아노 고유의 특징을 말하자면 오케스트라를 하나의 악기에 담은 것과 같다는 점입니다. 피아노는 인간의 양손, 열 손가락으로 건반 88개를 두드리며 다양한 소리와 화음을 냅니다. 피아노를 칠 때, 기계적인 방법을 통해 연주자의 개성이 표현되는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이케다
그런데 많은 독자의 질문이라 물어보고 싶군요. 지금도 무대에 설 때에 긴장해서 떨리나요?
행콕
지금은 본무대에서 긴장하는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이 강하지요. 뉴욕에 있는 카네기홀이나 링켄센터,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할리우드볼이나 디즈니홀 등 미국을 대표하는 큰 공연장에서 연주할 때는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이 더욱 강해집니다. 그래서 예전처럼 긴장하지는 않습니다. 제 연주에 확신을 갖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케다
'자신을 신뢰하고 두려움을 극복한다. 본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꾸밈없이 앞을 향해 용감하게 나아간다.' 인생 전반에 통하는 삶의 자세입니다. 또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말 부단하게 노력했기 때문이겠지요.
행콕
가령 악기를 연주하고 있어도 저는 연주자이기 전에 '인간'임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악기를 들고 청중 앞에 나설 때, 눈앞에 있는 것도 '인간'이고 저 자신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연주자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청중에게 다기서야 합니다. 이 불법을 만나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본디 있는 그대로의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표현하기보다 한 연주자로서 '어떤 연주를 할까'라는 데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연주자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오직 하나 '재즈가 정말로 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내가 진심으로 믿는 바를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생각뿐입니다. 재즈가 정말로 전해야 할 것은 음악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에 관한 면입니다.
웨인
동감입니다. 저는 무대에 오르기 전 준비로 근행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일이든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 '이렇게 근행을 할 수 있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 '청중이 있는 것을 당연히 여기면 안 돼.' '이제부터 나는 단순한 음악연주를 하는 것이 아니야. 콘서트 이상의 연주를 하는 거야'라고 말이지요. 위대한 재즈 연주자로 밴드의 리더였던 아트 블레이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객석에 앉아 있다면 절대로 무대를 떠나서는 안 된다. 단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에 가장 편안하게, 그 한 사람을 마음에 그리며 자신에게 지금 그 사람을 위한 마지막 순간이라는 생각으로 연주해야 한다."
이케다
학회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철저하게 '한 사람을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불법에서 말하는 인간주의 진수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광선유포는 무릎과 무릎을 맞댄 일대일 담판으로 달성된다"고 선언하고 일대일 대화와 소규모 인원이 모이는 좌담회를 가장 중요시하셨습니다. 사람이 모이지 않아도 웃으면서 "괜찮네. 괜찮아. 차분하게 하세"라고 그 자리에 있는 한사람 한사람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모든 것은 '한 사람'이 인간혁명 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명의 환희에 눈뜨게 하는 일을 한 사람에게서 한 사람으로 전개함으로써 확대의 파동이 일어났습니다.
석존이 깨달음을 연 후에 했던 최초의 설법은 옛 친구 5명과 며칠 동안에 걸친 대화였다고 전해집니다. 법화경 <방편품>에서는 석존이 사리불에게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불법에서는 부처가 법을 설하는 상대인 '대고중(對告衆)'도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행콕
음악 콘서트에서도 청중이 중요한 역할을 연출합니다. 청중과 연주자에 구별은 없습니다. 연주회장에 있는 사람 모두가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누구나 같은 감동을 경험합니다.
한번은 저희가 연주를 끝내고 무대를 나서려고 하는데 어떤 청중이 "여러분의 연주는 훌륭했어요!"하고 칭찬해준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당신도 훌륭합니다"하고 말하자 청중은 이구동성으로 "아니요.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걸요."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불법자(佛法者)로서 또 연주가로서 연주에 대한 제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연주는 나만의 위해 즉 자신의 기쁨이나 자신의 에너지를 고양시키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주는 확실히 마음을 즐겁게 만들고 의기를 높여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청중 각자가 자신의 훌륭함을 깨닫기 위해 연주하는 쪽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콘서트가 끝난 후에 악단원 중 한 사람이 "화장실에서 이런 대화를 들었어요"하고 알려주였습니다. 두 남자가 "오늘밤 연주는 굉장했어." "아, 내가 완전히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이야"라는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저는 정말로 '승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것을 위해 기원하고 있었으니까요.
쇼터
저도 허비와 마찬가지로 청중에게 일종의 '자각'을 초래하는 연주가 되기를 염원합니다. 또 무대에서는 늘 청중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데 촉발되는 연주를 목표로 합니다.
이케다
훌륭한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한 까닭은 무엇인가? 법화경에서는 "중생에게 부처의 지혜를 열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합니다. 불법은 모든 사람에게 열린 민중종교입니다. '내 마음에도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도 존귀한 부처의 생명이 갖춰져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모든 사람을 행복해지게 하기 위해 대지에서 춤추며 나온 보살이 지용보살입니다.
나는 이 '거대한 인간의 자각'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대지에서 솟아나온
우리이라면 우리이라면
이 세상에서 다하여야 할 사명이 있다
이 '인간혁명'이라는 긍지 높은 환희와 춤을 더욱 즐겁고 활기차게 확대합시다.(계속)
-화광신문 제 906호, 20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