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스크랩] 형제초 강의 (중) - ① (0907호)

박청춘1 2009. 7. 29. 18:16

 

제5회 이케다 SGI 회장 강의
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형제초 (중)
 
난(難)은 곧 명예!
사제의 대도(大道)를 걸어라!
 
[강의]
"낮은 산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오르는 도중에는 반드시 골짜기가 있다."
어느 날 회합에서 은사 도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불을 가장 높은 산의 맨 꼭대기에 비유하면, 초신(初信)의 공덕은 낮은 산을 오르는 일이다. 성불은 더욱 높은 산을 오르는 일이다. 여러분은 그 도중에 있는 골짜기에서 헤매면 안 된다."
"그야말로 삼장사마(三障四魔)가 분연히 다투어 일어나는 골짜기이므로 초신의 공덕에 취할 때가 아니다. 골짜기를 넘어 승리해야 하는 신심임을 깊이 생각하여 날마다 신심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거듭되는 혼란한 상황에서 대성인 불법(佛法)을 만나 신심을 시작하고, 초신의 공덕을 받은 학회원에게 주신 지도입니다.
신심의 진정한 공덕은 그 무엇에도 좌우되지 않는 절대적이고 행복한 경애를 획득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산에 오르며면, 반드시 불도수행이라는 '훈련'과 '단련'의 골짜기를 넘어야합니다. 이 점을 알기 쉽게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그 골짜기에서 높은 산꼭대기를 향하는 도중에는 삼장사마가 다투어 일어납니다. 골짜기를 건너 몹시 험하고 가파른 길을 오르지 않으면 산꼭대기에 절대로 다다르지 못합니다. 삼장사마가 나타나지 않으면 올바른 수행이 아닙니다.
초창기 회원은 도다 선생님의 자애로운 표정과 스승의 격려를 떠올리며 용감하게 삼장사마에 맞서고, 무너지지 않는 행복한 경애를 확립했습니다.
니치렌 대성인 불법은 마(魔)에 맞선 투쟁에 일생성불(一生成佛)로 이어지는 곧은길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대성인은 <형제초>에서 난을 만난 이케가미 형제에게 장마(障魔)를 맞받아치고 성불에 이르는 신심의 핵심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왜 법화경을 신앙하는 사람에게 난이 다투어 일어나는지, 다시 말해 법화경 때문에 받는 고난의 의미를 세가지로 설명하셨습니다.
첫째, '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이 법화경 행자의 성불을 방해하려고 지자(智者), 국왕, 부모, 처자의 몸에 들어가 법화경 행자를 괴롭히기 때문에 난이 일어납니다. 이 원리는 지난번 강의에서 확인했습니다.
둘째, 행자에게 '숙업'이 있기 때문에 난을 받습니다. 다만, 법화경 때문에 받는 난은 다름 아닌 '전중경수(轉重輕受)의 공덕'입니다.
셋째, 난은 제천선신(諸天善神)이 신심을 시험하는 '시련'이며, 성불하기 위해 '생명을 단련'하는 의미가 있다고 밝히셨습니다. 이번 <형제초> 강의는 둘째, 셋째에서 언급하신 법리를 중심으로 연찬하겠습니다.
 

 

 [본문]
우리들이 과거에 정법(正法)을 행하는 자에게 원질(怨嫉)을 한 일이 있었는데 이제 도리어 신수(信受)하므로 과거에 타인을 장해(障害)한 죄로 미래에 대지옥(大池獄)에 떨어져야 할 것을 금생(今生)에 정법을 행하는 공덕(功德)이 강성하므로 미래의 대고(大苦)를 초래하여 소고(小苦)를 만남으로써 넘기느니라. 이 경문에 과거의 비방(誹謗)에 의하여 여러가지 과보(果報)를 받는 가운데 혹은 빈가(貧家)에 태어나고 혹은 사견(邪見)의 집에 태어나며, 혹은 왕난(王難)을 만난다 등 운운 이 중에 사견의 집이라 함은 비방정법(誹謗正法)의 집이며, 왕난 등이라 함은 출생(出生)하여 악왕(惡王)을 만나느니라. 이 두가지의 대난(大難)은 각각이 자신의 몸으로써 느꼈으리라. (형제초 1083쪽 2행~6행)

 
[현대어역]
우리는 과거세에 정법을 행하던 자를 적대했지만, 지금은 반대로 자신이 정법을 믿고 행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므로 과거세에 다른 사람의 수행을 방해한 죄로 미래세에는 대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데, 현재세에 정법을 행하는 공덕이 크기 때문에 미래세에 받아야 할 대고를 지금 불러일으켜 소고를 받고 있다.
이렇듯 반니원경을 비롯한 경문에서는 과거세의 비방죄로 받는 여러 가지 과보로서 어느 때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어느 때는 '그릇된 사상을 믿는 집안에 태어나며', '어느 때는 '국왕의 박해를 받는다.'고 설한다.
그 중에서 '그릇된 사상을 믿는 집안'은 정법을 비방하는 집안을 가리킨다. '국왕의 박해를 받는다.'는 악왕이 다스리는 세상에 태어나는 일을 가리킨다. 이 두 대난은 여러분 자신에게 해당된다고 느낄 것이다.
 
대난은 '전중경수'를 증명
대성인은 이 문단에서 정법을 수지한 사람이 받는 대난을 '전중경수(轉重輕受), 즉 숙명전환(宿命傳煥)의 공덕이라고 밝히셨습니다. 과거세에 정법을 행하는 자를 박해한 죄로 '미래에 대지옥에 떨어져야 할' 과보가 있는데, 금세에 '정법을 행하는 공덕'이 강하고 왕성하므로 '미래에 받을 대보'를 불러 일으켜 현세에서 '소고'로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숙명전환을 설하는 니치렌 대성인 불법에서는 먼저 모든 악업(惡業)의 근원은 묘법에 대한 불신(不信)과 방법(謗法)이라고 통찰하셨습니다. '근본적인 악(惡)'을 분명히 하면, '근본적인 선(善)'도 명확해집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선악의 인과가 명료해져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숙명을 전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근본악'인 방법(謗法)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佛性)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므로 '만인성불'을 가르치는 법화경을 헐뜯는 일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불성을 열고자 끊임없이 행동하는 '법화경 행자'를 비방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법화경 행자'와 함께, 모든 사람의 불성을 부정하는 근원악과 싸우는 일입니다.
이 '호법(護法)의 공덕력'으로 미래에 받아야 할 괴로운 과보를 현세에 가볍게 받는 일이 '전중경수'입니다. "지옥의 괴로움은 금방 사라지고" (어서 1000쪽), 금세에 모든 "중죄(重罪)를 다 소멸하고" (어서 233쪽), 거리낌 없는 불계(佛界)의 경애를 열 수 있습니다. 이른바 악에서 악으로 유전하는 경애가 선에서 선으로 이어지는 불계의 생사(生死)로 바뀌며 생명의 궤도를 방향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성인 불법에서 설하는 숙명전환입니다.
그러므로 전중경수로 받는 난은 '호법의 공덕력'으로 일어나며, 또 숙명전환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형제초>를 바탕으로 말씀드리면, 대성인은 금세 전중격수로 받는 '소고(小苦)'에 관해 구체적인 보기를 드셨습니다. 바로 반니원경(般泥洹經)에서 설하는 여덟가지 난 중에서 '사견(邪見)'의 집안에 태아난다.' '왕난(王難)을 만나다'는 두가지 난입니다. 이 두가지가 이케가미 형제에게 해당하는 난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사견의 집에 태아난다.'는 정법을 비방하는 집안에 태아난다는 뜻입니다. 또 "왕난 등이라 함은 행자를 박해하는 권력자가 다스리는 곳에 태아나거나 법화경 행자를 박해하는 사회에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이케가마 형제가 '사견의 집안에 태어나고' '왕난을 만나는' 일은 대성인과 함께 묘법홍통을 실천하기 때문에 일어난 난이며 사제불의의 실천을 관철하고 있다는 증명이기도 합니다.
 

 

[본문]
각자(各者)는 힘껏 법화경(法華經)을 믿어 왔으므로 과거(過去)의 중죄(重罪)를 책(責)하여 끄집어 냈느니라. 비유컨대 철(鐵)을 공들여 달구어 치면 흠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돌은 태우면 재가 되고, 금(金)은 태우면 진금(眞金)이 된다. (형제초 1083쪽 11행 ~12행)
 

 

[현대어역]
이케가미 형제가 지금까지 법화경을 열심히 믿고 있으므로 과거세 중죄를 책하여 끄집어내고 있다. 이를테면 철을 충분히 두드리고 치면, 내부의 흠이 표면에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돌을 태우면 재가 되고, 금을 태우면 진금이 된다.
 
숙명전환은 생명을 최고로 단련
철을 여러 차례 달구고 두드리면, 부러지는 원인이 되는 내부 불순물이 밖으로 나옵니다. 그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 한층 더 강해집니다. 마찬가지로 형제의 신심이 강성하기 때문에 과거세의 중죄를 끄집어내어 책망하는, 금세에 고난이라는 과보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렇듯 고난은 전중경수, 숙명전환하는 과정에서 의미가 심화되고, '신심연마' '생명 단련'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대성인은 "쇠는 불에 달구어 두드리면 검(劍)으로 되고" (어서 958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신앙은 숙명에 정면으로 맞서야 비로소 단련되고 강해집니다. 고민이나 괴로움이라는 '업화(業火)'로 불태웠을 때, 인간으로서 진가를 발휘합니다. '신념이 약하면' 재로 변해 부서지고 흩어집니다. '신념이 강하면' 진금으로 변해 더욱 빛을 발합니다. 불법이 추구하는 커다란 목적은 우리 생명을 끝까지 연마하고 강하게 단련하는 일입니다.
연마하지 않으면 인재로 빛나지 않습니다. 단련하지 안으면 진정한 인물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광선유포를 위해 철저히 싸우면 과거세 숙업을 전환할 수 있고, 우리 인생을 금강불괴(金剛不壞)의 보검(寶劍)처럼 빛낼 수 있습니다.
 단련이라고 말하면, 마키구치 선생님과 도다 선생님 그릭고 도다 선생님과 나에 이르는 창가(創價)의 사제(師弟)도 생명을 연마하는 나날이었습니다.
열아홉에 마키구치 선생님을 만나신 도다 선생님은 1920년 4월 '젊은 날의 수기'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국가의 재목, 세계 지도자로서 대임을 받을 수 있도록 갈고 다듬어야 하며, 대임을 완수할 수 있도록 연마해야 한다. (중략) 요즘 사람의 비난과 비웃음은 안중에도 없다. 최후의 목적을 달성할 뿐."
젊은 도다 선생님은 이 무렵 마키구치 선생님이 교장으로 근무하시는 니시마치진조소학교 임시교사로 채용되셨습니다. 위대한 스승을 만나서 위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갈고 다듬는다.' 즉 인격, 실력, 몸과 마음을 단련하겠다고 깊이 결심하셨습니다.
 나도 열아홉살 때, 운명적으로 은사 도다 선생님을 만났고 영광스러운 사제불이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도다 선생님 사업이 좌절해 가장 어렵고 힘들었을 때도, 앞장서서 홀로 스승을 지키고 떠받쳤습니다. 1950년 12월에 쓴 일기에 당시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고투여, 고투여,
너는 그 속에서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
너는 그 속에서 강철 같은 의지를 키울 수 있다.
너는 그 속에서 진실한 눈물을 알 수 있다.
너는 고투 속에서 인간혁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라."
도다 선생님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신세를 진 자들이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 큰 은혜를 저버리고, 선생님을 "이 자식'이라는 식으로 심하게 욕하며 떠났습니다. 그러나 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도다 선생님과 함께 받는 고난은 곧 명예이고, 단련은 곧 승리를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도다 선생님이 반드시 제2대 회장으로 광선유포를 지휘하실 수 있게 끝까지 기원하며 악전고투의 벽을 돌파했습니다.

 

출처 : 형제초 강의 (중) - ① (0907호)
글쓴이 : 一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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