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화광신문 781호 이케다 선생님 스피치 중에서 2(퀴리부인2)

박청춘1 2008. 5. 23. 08:17
         영원히 배우고 승리하는 여성 퀴리부인을 말한다 2

인생에는 온갖 시련과 슬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결코 거기에 져서는 안 됩니다.
소카여자단기대학과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은 반드시 인생의 승리자가 되어 주기 바랍니다.
이것이 나와(이케다 선생님) 아내의 바람입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내(이케다 선생님) 경험에 비추어 봐도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잘 압니다.    우리 세대는 열심히 공부에 전념해야 할 10대 청춘이
전쟁으로 엉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학문에 대한 열정은 조금도 식을 줄 몰라 '이동 대학'에서 배웠습니다.
'이동 대학'은 정규 대학이 아닙니다.   조국 폴란드의 부흥을 목표로 하는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비밀 대학'입니다.    왜 '비밀'인가?
만약, 모여서 공부하는 곳이 경찰에 발각되면 즉시 투옥되었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은 감시의 눈을 피해 장소를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면서 때로는 교사가 되어,
때로는 학생이 되어 서로 배우며 지성을 연마했습니다.
독립을 위해 여러 번, 용감하게 봉기해 가혹한 탄압을 받은 폴란드 사람들은
"폭력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  오직 교육으로 민중이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결론에 깊이 도달했습니다.
배우자!  괴로워하는 동포를 위해!
힘을 기르자!  미래를 위해!  
이 숭고한 사명감이 바로 청년들이 학문에 힘쓰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대 자신의 사명을 깊이 자각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뿌리를 깊게 내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재능의 싹을 급속히 뻗을 수 있습니다.
퀴리 부인은 썼습니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을 개선하지 않고서 더 좋은 사회는 건설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각자가 자신의 운명을 열어 가려고 노력하면서 동시에 전 인류에 대해 책임을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가장 도와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의 운명을 변혁하라!
인류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라!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라!  이것이 마리 퀴리의 신념이었습니다.
이것은 창가의 '인간 혁명' 이념과도 상통합니다.
마냐(마리의 어릴 적 애칭)는 열여섯 살 무렵부터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가정교사 일을 시작했습니다.(중략)
당시 여성 가정교사는 멸시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마냐는 정말 싫은, 오만한 사람 밑에서 일해야 하는 때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마냐는 젊은 나이에 냉엄한 현실을 지겹도록 겪으면서 그 하나하나를 살아 있는 인간학의 양식으로 바꾸었습니다.
마냐는 벗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습니다.
"인간이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조금 알게 되었음은 내게 수확이었습니다.
소설의 인물 같은 사람이 실제로도 있음을 알았으며 돈으로 타락한 사람들과 사귀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힘들 때, 괴로울 때 마냐는 벗과 대화를 나누거나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격려했습니다.
좋은 우정은 청춘의 최고 힘이자 보배입니다.
마냐는 수입을 더 늘리기 위해 부모 곁을 떠나 폴란드의 지방으로 가서 일할 결심을 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이별을 고하고 기차로 3시간, 썰매로 4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마냐는 아버지를 소중히 생각하는 착한 딸이었습니다.
늙은 아버지는 큰 수입이 없는 데다 투기 실패로 재산을 잃어 자녀들에게 충분히 교육을 받게 해 줄 수 없음을
줄곧 걱정했습니다.  그렇지만 마냐는 그러한 아버지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아버님이 제게 베풀어 주신 깊은 은혜에 영원히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제 유일한 슬픔은 저희가 입은 은혜에 보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한, 아버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만이 가능합니다."
딸에게서 이러한 편지를 받은 아버지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부모에게 효도하는 이러한 행실에 마리 퀴리라는 여성의 깊은 인간성과 지성이 응집되어 있음을
슬기로운 여러분은 느끼기 바랍니다.
불전(佛典)에는 "어버이에게 좋은 것을 드리려고 생각하며, 하다못해 해 드릴 일이 없으면
하루에 두세 번 웃은 얼굴로 대하라 함이니라." 라고 설해져 있습니다.
효도라고 해도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하루 두세 번 웃는 얼굴'이라도 좋습니다.  활기찬 목소리라도 좋습니다.
부모 곁을 떠나 있는 사람도 지금은 전화가 있습니다.  물론 편지도, 엽서도 있습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진심'입니다.  '지혜'입니다.
'효도'가 인간으로서 성장한다는 증거입니다.
청춘 시절은 고뇌의 연속입니다.  
그 모든 것이 다 자신이 강하고 슬기로우며 크게 되기 위해 필요한 시련입니다.
희망에 넘쳐 파리에서 공부를 시작한 마리였지만 생각지 못한 벽에 부딪쳤습니다.
프랑스어에는 충분히 자신이 있었지만 실제로 강의를 들어 보니, 
알아 듣지 못하거나 따라가지 못한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우리 유학생 여러분의 고생에도 상통하리라 봅니다.
더욱이 독학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쌓아 온 지식이 동급생들에게 비해 너무나도 빈약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로 끙끙 고민하며 침울해 할 마리가 아니었습니다.
공부가 부족한가?  그럼 더 공부하면 되지!
지금까지 한 것보다 10배, 100배 아니 1000배 더!
혼자 살기 시작한 마리는 단호하게 "1000배 더 열심히 공부했다."라고 썼습니다.
유학생 분들은 각 나라의 지도자가 될 깊은 사명을 띠고 있습니다.
마리는 나중에 대성(大成)하고 나서도 각국에서 온 유학생이나 연구자를 정성껏 소중히 대했습니다.
각자의 조국에 대한 찬사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나라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나라 사람들은 나를 정말로 환영해 주셨습니다."등으로.
나는(이케다 선생님) 유학생 분들이 그 나라의 보배로운 인재이고 아울러 인류 전체의 
'평화의 보배'이자 미래에 대한  '희망의 보배'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마리는 아버지가 보낸 약간의 생활비와 자신이 저금한 것을 합쳐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꾸려 나가야 했습니다.
겨울에는 난방에 드는 석탄 값을 절약하기 위해서도 줄곧 대학과 도서관에서 공부했습니다.
집에 돌아가 추위에 떨면서도 더욱 공부했습니다. (중략)
버터 바른 빵만 몇 주 동안이나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과일 한 개, 초콜릿 한 조각이 얼마나 귀중한 자양분이었을까.
그러나 마리는 쓸쓸하거나 비통한 마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티없이 맑고 밝은 모습을 안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위대한 목표를 위해 고생하는 것은 괴로움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쁨입니다.  긍지입니다.
청춘 시절의 고생이야말로 불멸의 재보입니다.
화려한 사교계가 아니어도 고금의 위인들과 나누는, 마음 설레는 지성의 대화가 있었습니다.
호화로운 식사가 없어도 인류의 영지가 담긴 유산이 마음을 풍족하게 해 주었습니다.
유행하는 패션이 없어도 대우주의 진리라는 최첨단의 발견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마리는 어떠한 전당보다도 장엄한 '학문의 왕국'에서 왕녀처럼 청춘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습니다.
마리 퀴리가 가난하고 고독하게 사는 속에서 온 생명을 연소시켜 열심히 공부한 이 시기는
'자기 삶에서 영웅시대'였다고 합니다.
마리는 열심히 공부한 결과, 1893년에 물리학 학사 시험을 1등으로, 
다음 해는 수학 학사 시험을 2등으로 합격했습니다.
"심한 사치와 부(富)에 대한 욕망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는 학문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마리가 탄식하며 한 말입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마리의 시대 이상으로 그러한 풍조가 가득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진지하게 배우고 훈도 받는 우리 단대의 교풍이 상쾌하게 빛납니다.
마리는 공부로 세월을 보낸 다락방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귀중한 마음의 방"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혼자 조용히 도전하며 그 몸을 계속 단련한 곳.
지금도 갖가지 추억으로 채색된 세계"라고 회상했습니다.
고민에 직면했을 때 되돌아갈 수 있는 원점을 가진 인생은 앞이 막히지 않습니다.
이 단대 캠퍼스는 여러분의 영원한 전진과 승리의 원점인 천지입니다.
1992년 소카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당시)를 방문한 (로자)파크스 씨를,
어학연수 중이던 단대생이 환영했습니다. (중략)
그러고 나서 2년 뒤, 세운 지 얼마 안 된 퀴리 동상이 지켜 보는 가운데 파크스 씨가 
하치오지 소카여자단기대학과 소카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캠퍼스를 안내할 때, '만엽(萬葉)의 집'(건물 이름)근처에서 내(이케다 선생님) 글이 새겨진 
비석을 가만히 바라보신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그 글을 지금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보내 드립니다.
"학문에 왕도는 없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만이
인간으로서 왕자(王者)의 길을 간다."
출처 : 한국SGI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글쓴이 : 로즈캐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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