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이케다 SGI 회장 강의 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스슌천황어서(하) (삼종재보어서) '마음의 재(財)가 제일' 이 바로 인생을 승리하는 핵심 [강의] "마음의 재(財)가 제일이로다." (어서 1173쪽) "마음의 재를 쌓도록 하시라." (어서 1173쪽) 이 구절은 니치렌대성인이 역경에 처한 문하 시조깅고에게 보내신, 승리로 이끄는 최대 지침입니다. '마음'은 인생에서 음뜸가는 '재보'입니다. 그 까닭은 '마음'속에 위대한 가능성과 더할 나위 없는 궁극적 존귀함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얼마든지 넓어집니다. 또 얼마든지 깊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강해집니다. 문호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양보다 더 장대한 광경, 그것은 천공(天空)이다. 천공보다 더 장대한 광경, 그것은 실로 인간의 깊은 내면이다."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 재적인 마음의 세계를 어떻게 넓히는가. 마음을 어떻게 단련하고, '마음의 재'를 어떻게 쌓을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묘법이 있습니다. 니치렌대성인은 이 어서 후반부에서 "마음이 재가 제일"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인생을 진정으로 승리하려면 묘법에 대한 신심으로 불성(佛性)을 내훈(內薰)하는 일이 으뜸가는 재보입니다. 이 점을 결코 잊지 말라는 중대한 지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어서를 받기 두달 전, 시조깅고는 주군 에마 씨에게 소령을 몰수하겠다는 말을 듣고, 최대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시조깅고는 소령을 버리더라도 법화경의 신심을 관철하겠다는 결심으로 일어섰습니다. 대성인은 그 마음을 칭찬하며 "어떠한 걸인이 되더라도 결코 법화경에 흠을 내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이 말씀은 소령(곳간의 재보)보다, 무사라는 처지(몸의 재)보다, 신심이라는 '마음의 재'가 제일이라는, 신앙자가 지녀야 할 근본규범을 가르치신 지도입니다. 사실 시조깅고가 그 말씀대로 싸우기 시작하자, 역경 속에서 광명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즉 병에 걸린 주군을 간병하게 됨으로써 주군에게서 다시 신뢰를 회복한 것입니다. 반대로 시조깅고를 괴롭힌 적대자들에게는 벌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어서에서는 이렇듯 승리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던 이유는 '내훈외호(內薰外護)'라는 원리 때문이라고 밝히며 시조깅고의 신심을 찬탄하셨습니다. 시조깅고가 불퇴전(不退轉)의 신심으로 일어섰기에 불성이 훈발(薰發)했습니다. '내훈'의 힘으로 제천선신이 움직이고, 주군이 다시 시조깅고를 기용하는 '외호'라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시조깅고를 둘러싼 상황은 아직 위태로웠습니다. 대성인은 승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거듭 일러주셨습니다. 습격에 대비해 주의를 태만히 하지 말아야 하고, 대인관계에서는 거만하지 않게 성실히 행동해야 하며, 형제나 동지 간에는 사이좋게 지내고, 같은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 등을 세세하게 지도하셨습니다. 또 시조깅고의 약점인 '급한 성격'을 훈계하고, 방심하거나 주의 사람들과 균열을 만들어 승리의 흐름을 깨지 않도록 엄중히 주의하셨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승리에 이르려면, 본격적으로 숙명을 전환하는 도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 도전은 무명(無明)에 빠진 자기 생명을 부수는, 인간혁명이라는 실천이기도 합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만심에 차서 '투쟁심'을 잃어버리면, 다시금 자신의 무명이라는 약점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대성인은 어디까지나 신심이 바로 인생에서 으뜸가는 재보라고 확인하며 철저히 가르치셨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마음의 재가 제일"이라는 불법철리를 다시 한번 배독합시다.
[본문 _ 스슌천황어서 1173쪽 3행~7행]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것은 참수(斬首)당하려 했을 때, 귀하(貴下)는 동행(同行)하여 말고삐를 잡고, 울면서 슬퍼하신 것을 어느 세상(世上)엔들 잊겠느뇨. 설령 귀하의 죄(罪)가 깊어서 지옥(地獄)에 들어가신다면, 니치렌을 아무리 부처가 되라고 석가불(釋迦佛)이 권유(勸誘)하신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같이 지옥으로 가리라. 니치렌과 귀하가 함께 지옥에 들어간다면 석가불,·법화경(法華經)도 반드시 지옥에 계실 것이로다. (중략) 만약 조금이라도 이 일을 어기시고 나빠졌을 때 니치렌을 원망(怨望)하지 말지어다. |
[현대어역] 뭐니뭐니해도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일은 내 목이 잘리려 했을 때, 귀하가 함께 따라와서 말고삐를 붙잡고 울며 슬퍼하신 일입니다. 이 일은 어느 세상에서도 잊지 못합니다. 만일 귀하의 죄가 깊어서 지옥에 들어가는 일이 생긴다면, 석가불이 니치렌에게 아무리 "부처가 되라."고 이끄시더라도 따르지 않겠습니다. 귀하와 같이 지옥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니치렌과 귀하가 함께 지옥에 들어간다면, 석가불도 법화경도 틀림없이 지옥에 계실 것입니다. (중략) 만약 조금이라도 지금까지 말씀드린 일을 어기신다면,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니치렌을 원망하는 안 됩니다. '사제불이'의 원점을 잊지 말라 "막히면 원점으로 돌아가라." 이는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선생님이 밝히신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법화경의 근간은 '사제불이(師弟不二)'입니다. 니치렌불법은 '사제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자의 원점은 스승과 공전(共戰)하겠다는 맹세에 있습니다. 항상 이 사제라는 원점으로 돌아가면 결코 막히지 않습니다. 이 단락에서는 사제의 원점을 확인하셨습니다. 그 원점은 곧 다쓰노구치 법난에서 대성인이 처형장으로 연행되실 때, 시조깅고가 말고삐에 매달려 순교할 각오를 나타낸 일입니다. 대성인은 이때 보인 시조깅고의 신심을 칭찬하며 "설령 만일 귀하가 지옥에 들어가는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아무리 석가불이 내게 '부처가 되라.'고 말해도 귀하와 함께 지옥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심에서 우러 나오는 제자의 정성에 최대로 응하는, 참으로 '인간의 종교'인 니치렌 대성인 불법의 극치가 여기에 있습니다. 끝까지 묘법을 확신하는 스승 대성인가 제자 시조깅고가 함께 지옥에 간다면 석가불과 법화경도 틀림없이 지옥에 계실 것이며, 그곳은 이미 지옥이 아니라 불계임을 밝히셨습니다. 지옥즉적광(地獄卽寂光)이라는 법리입니다. 니치렌대성인불법은 어떤 곳에서도 불계를 빛낼 수 있습니다. 스승 마키구치 선생님과 제자 도다 선생님은 그 말씀을 몸으로 읽으셨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추위가 절정에 이른 옥중에서 이렇게 쓰셨습니다. "마음먹기 하나로 지옥에서도 즐거움이 있다." 함께하신 도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설령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아무렇지도 않다. 그때는 지옥에 있는 중생을 절복해서 적광토로 만들겠다." 이 자세가 신심의 핵심입니다. 시조깅고가 대성인과 함께 싸우겠다는 마음을 잊지 않는 한, 지옥즉적광이라는 원리에 따라 언제 어느 곳에서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한 자기 마음에 지고, 성급하게 굴며, 주위에 대한 배려를 소홀히 하면, '불이(不二)'의 길에서 벗어납니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거듭거듭 훈계하셨습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을 어긴다면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니치렌을 원망하면 안 됩니다." 법을 체현하고 홍통하는 스승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을 철저히 합치시키는 일이 승리하는 핵심입니다. 그 까닭은 스승의 지도를 소홀히 하고, 흔들리는 자기 마음을 기존으로 삼으면, 험난한 불도수행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 말라." (어서 1088쪽)입니다. '사제의 마음'을 잊으면 일생성불 하지 못합니다.
[본문] _ 스슌천황어서 1173쪽 9행~10행 또한 세간(世間)을 지내기 어렵다는 것을 한탄(恨歎)하여 남에게 말하지 말시라. 만약 그렇게 한다면, 현인(賢人)으로서는 벗어난 일이로다. |
[현대어역] 또 이 세상이 지내기 힘들다는 등, 한탄하며 남에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현인으로서 벗어난 일입니다. '한탄'은 '마음'의 건설을 후퇴시킨다 여기에서 대성인은 특히 '한탄하는 마음'을 엄하게 질타하셨습니다.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을 무심코 구구하게 한탄해버리는 범부의 급소를 예리하게 간파하신 구절입니다. '한탄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유사시에는 미혹하지 않고 순교할 각오를 관철한 시조깅고마저 한결같은 성격 탓에 인간관계에서 생긴 갈등에는 약해 그만 푸념을 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성인이 "남에게 말하지 마시라."고 말씀하시듯, 한탄이나 푸념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버리는 일은 현인이 아닌 어리석은 사람의 생활태도입니다.
'만일 세상이 지내기 힘들다는 식으로 한탄하며 아내를 비롯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라도 하다면, 아내가 남편과 혜어지는 일이 못내 아쉬워서, 창피를 다하게 할 뜻은 아닐지라도 남편에게 들은 말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 남편의 수치를 모두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아내가 아니라 남편의 행동이 나빴끼 때문입니다." 푸념은 연약한 마음을 조장하고, 정체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대성인은 시조깅고에게 푸념을 배제하고 자신의 인간혁명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 바로 인생을 승리하는 곧은 길임을 가르치셨다고 짐작됩니다.
※ 어서 1173쪽 13행 ~ 15행 인신(人身)은 받기 어려우니 손톱 위의 흙이요, 인신은 갖기 어려우니 풀잎 위의 이슬이로다. 백이십(百二十)까지 살아서 이름을 더럽히고 죽느니보다는 살아서 일일(一日)이라도 이름을 떨치는 일이야말로 중요(重要)하니라. 나카쓰카사사부로자에몬노조는 주군(主君)을 위해서도 불법(佛法)을 위해서도, 세간(世間)에 있어서의 마음씨도 정말 좋았었다 하고, 가마쿠라 사람들의 입으로 칭송(稱頌) 받게 하시라. |
[현대어역] 인간으로 태어나는 일은 드문 일이니 손톱 위에 올린 흙처럼 매우 적습니다. 인간으로서 목숨을 유지하는 일은 어려우니 풀잎 위에 매달린 이슬처럼 덧없습니다. 백이십살까지 살아서 이름을 더럽히고 죽느니 살아서 하루라도 이름을 떨치는 일이 중요합니다. "나카쓰카사사부로자에몬노조는 주군을 섬기는 일에서도, 불법을 위해서도 온 힘을 다하는 점에서도, 세상을 사는 마음가짐에서도 매우 훌륭하다."라고 가마쿠라 사람들에게 칭송받을 수 있도록 하세요. 진정한 인생 승리자여라 '손톱 위에 올린 흙'보다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더 어렵습니다. '풀잎 위에 매달린 이슬'보다 목숨을 부지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대성인은 인간으로 태어난 일이 얼마나 더없이 소중한지 그리고 인간으로 살아 있는 이 하루와 지금이라는 순간이 얼마나 귀중한지 밝히셨습니다. "백이삽살까지 살아서 이름을 더럽히고 죽느니보다는 살아서 하루라도 이를을 떨치는 일이 중요합니다."라는 말씀은, 인생의 가치가 무엇으로 결정되는지를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무엇으로 정하고, 그 목적을 향해 어떻게 전진했느냐에 따라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가치'가 생깁니다. 대성인은 이 점을 바탕으로, 시조깅고의 근본적인 승리를 위해 "주군을 위해서도 불법을 위해서도, 세간에 있어서의 마음씨도 정말 좋았다 하고, 가마쿠라의 사람들의 입으로 칭송받게 하시라."고 구체적인 지표를 권유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주군과 신뢰관계를 재구축하고, 신앙자로서 불퇴전으로 실천하며, 세간에서 신용받는 사람이 되는 세가지 승리가 필요하다고 밝히셨습니다. 이 세가에 불성의 내훈이라는 '마음의 재'가 빛납니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모든 국면에서 불성을 빛낼 때가 바로 진정한 승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런 승리를 증명하는 일로서 "정말 좋았었다 하고, 가마쿠라의 사람들의 입으로 칭송받게 하시라."고 밝히셨습니다. 이 말씀은 불법자가 승리한 실증을 보이는 모습으로서 중요한 지침입니다. 즉 근본적인 승리는 사람들이 "정말 좋았었다."라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빛나는 인간성'에 있습니다. 또 한사람 한사람이 이렇게 신뢰받는 일이 광선유포의 투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주위에서 "좋았었다."라고 칭찬받는 일은 바로 불법자로서 지닌 '인간성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재'가 지닌 힘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신뢰받고, 모범적인 존재라고 높이 평가받습니다. 불성이 빛나는 인간성으로 나타나고, 그 훌륭함이 신심하지 않는 사람들도 감동시킵니다. "저 사람은 정말 뭔가 다르다. 빛나고 있다."라고 신용받는 일이 불법의 확고한 실증입니다. 주군과 주군의 가족을 비롯해 동료와 형제 그리고 동지 등, 시조깅고를 둘러싼 인간관계가 결코 순조롭지만은 않았습니다. 곧은 성격이 화근을 일으킨 부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신앙의 승리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마음을 연마하고, 위대한 인간혁명의 실증을 나타내며, 가마쿠라 문하의 중심자로서 모범적인 리더로 성장하기 바란다, 끝까지 깊은 인생을 구축하기 바란다는 스승의 자애가 "가마쿠라의 사람들의 입으로 칭송받게 하시라."는 지도에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 _ 스슌천황어서 1173쪽 15행 - 16행 곳간의 재(財)보다도 몸의 재보가 뛰어나고, 몸의 재보 보다 마음의 재가 제일(第一)이로다. 이 글월을 보시고부터는 마음의 재를 쌓도록 하시라. |
[현대어역] '곳간의 재보'보다 '몸의 재보'가 더 뛰어납니다. '몸의 재보'보다 '마음의 재보'가 으뜸입니다. 이 편지를 보고나서는 '마음의 재보'를 쌓으세요. 끝까지 단련한 마음이 무상(無上)의 가치 이 어서 속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입니다. '곳간의 재'는 물질적인 재산입니다. '몸의 재'는 건강이나 몸에 익힌 기능입니다. '마음의 재'는 어떤 면에서 말하면 '풍요로운 마음'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신심'이며 신심으로 단련되는 '빛나는 불성'입니다. 이 구절에서 대성인은 세가지 '재보'의 순서, 즉 명확한 가치기준을 밝히셨습니다. 이때 시조깅고는 소령몰수라는 위기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물론 소령을 비롯한 재산이 생활양식으로서 중요하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러나 '곳간의 재보' '몸의 재보'보다 '마음의 재보'를 쌓는 일이 모든 일에 승리하는 근본입니다. 지금까지 시조깅고가 신심근본으로 분투한 일은 "마음의 재가 제일"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첫걸음은 승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성인은 굳이 앞으로도 계속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승리지침으로서 여기에서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재'를 근본으로 했을 때, '곳간의 재'도 '몸의 재'도 진실한 가치를 올바르게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마음의 재보를 구축한다.'는 인생의 근본목적이 중요합니다. 설령 '곳간의 재'나 '몸의 재'를 지녔어도 이 근본목적을 상실하면 재보에 대한 집착이 생깁니다. 그 재보를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도 이어지며 오히려 괴로운 원인이 됩니다. '마음의 재'를 쌓는 일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는 곳에 올바른 인생의 목적관이 있습니다.
[본문] _ 스슌천황어서 1174쪽 11행 - 13행 공자(孔子)라 하는 현인(賢人)은 구사일언(九思一言)이라 하여, 아홉번 생각해서 한번 말하였다. 주공단(周公旦)이라는 사람은 목욕(沐浴)할 때는 세번 머리를 쥐고, 먹을 때는 세번 토(吐)하였다. 분명(分明)히 들으시고, 나를 원망(怨望)하지 마시라. 불법(佛法)이라고 함은 이것이외다. |
[현대어역] 공자라는 현인은 '구사일언'이라 해서 아홉번 사색하고 한번 말했다고 합니다. 주공단이라는 사람은 목욕할 때는 머리를 세번 쥐어짜고, 식사할 때는 입안에 든 음식을 세번 내뱉어서, 결코 다른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단단히 잘 들으세요. 나를 원망하면 안 됩니다. 불법이라 함은 이 일을 말합니다. 불법의 근간은 성실한 대응에 현실을 떠난 불법은 없습니다. 시조깅고의 기질을 몹시 걱정하신 대성인은 "제일(第一) 비장(秘藏)하는 얘기가 있으니 써 보내노라." (어서 1173쪽)고 쓰신 다음에 스슌천황 고사를 소개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에 대한 교훈입니다. 대성인은 그 이야기에 이어 아홉번 사색하고 한번 말할 정도로 신중하게 발언한 공자 이야기와 한창 목욕이나 식사를 하던 중에도 찾아온 손님을 결코 기다리게 하지 않았던 주공단 이야기를 통해, 인간에게는 심사숙고하는 일을 비롯해 성실하게 행동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은 "분명히 들으시고", 즉 단단히 잘 들으라며 시조깅고의 가슴 깊이 새겨 넣으셨습니다. 시조깅고가 자칫하면 몸을 망칠 수도 있는 이 결점을 극복하고 '마음의 재'를 구축하지 않으면 인생에서 진정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성인은 "불법이라고 함은 이것이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법은 인간의 행동으로 규명됩니다. 공자와 주공단 등이 각자의 철학을 행동으로 나타냈듯, 불법에서 밝히는 '불성의 훈발'이라는 궁극적인 '마음의 재'도 신앙자의 행동으로 나타내야 불법의 실증을 낼 수도 있고, 홍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어서에서는 마지막으로 불법에서 '사람의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_ 스슌천황어서 1174쪽 14행 - 15행 일대(一代)의 간심(肝心)은 법화경(法華經), 법화경의 수행(修行)의 간심은 불경품(不輕品)이니라. 불경보살(不輕菩薩)이 사람을 존경(尊敬)한 것은 어떠한 일이뇨. 교주석존(敎主釋尊)의 출세(出世)의 본회(本懷)는 사람의 행동(行動)에 있었노라. 황송(惶悚)하오. 황송하오. 현명(賢明)함을 사람이라고 하며, 어리석음을 축(畜)이라 하느니라. |
[현대어역] 석존 일대의 간심은 법화경이며 법화경 수행의 간심은 불경품입니다. 불경보살이 사람을 존중한 일에는 어떤 뜻이 있을까요. 교주석존이 출세한 본회는 사람의 행동을 밝히는 일에 있었습니다. 아무쪼록 잘 들으세요. 현명함을 사람이라 하고, 어리석음을 축생이라 합니다. '사람의 행동'이 불법의 근본목적 대성인은 석존 일대의 가르침의 핵심은 법화경이며 법화경을 수행하는 진수는 불경품이고, 불경품에서 끝까지 모든 사람의 불성을 믿고 예배를 계속했다고 설하는 불경보살의 행동에 이 어서의 결론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적인 차원에서 보면 틀림없이 부처다."라는 진리를 깊이 신해(信解)하고, 어떤 박해를 만날지라도 모든 사람을 계속 예배한 불경보살의 행동이 바로 법화경 정신을 체현한 모습입니다. 법화경은 석존이 '출세한 본회(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한 근본목적)'를 밝힌 경전이라고 일컫습니다. 이 법화경 정신을 체현하는 불경보살의 실천을 설한 의미는 석존이 출세한 본회가 '사람의 행동'을 밝히는 일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법은 스스로 홍통되지 않는다. 사람이 법을 홍통하는 고로 인법(人法)이 함께 존귀하니라" (어서 856쪽)고 말씀하시듯, '법'은 결국 '사람의 행동'으로 나타나야 비로소 존귀함이 알려지고 홍통됩니다. '마음의 재'라 할지라도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비로소 '마음의 재'가 묘법과 불성의 힘을 사람들에게 밝힐 수 있고, 증명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재가 제일"은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느냐 하는 가치관을 밝힌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존경하는 행동'은 그 가치관을 바탕으로 불법자(佛法者)의 행동규범을 밝힌 말씀입니다. 불경보살이 보인 모든 사람을 존경하는 '행동'은 만인성불이라는 부처의 진의를 설하는 법화경 사상을 체현한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불경보살이 실천한 '사람을 존경하는 행동'은 바로 부처의 진의입니다. 묘법을 믿고, 불성을 나타낸다는 묘법의 공덕을 몸으로 체현한 '사람의 행동'이 바로 묘법의 존귀함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묘법의 공덕을 몸으로 나타낸 '사람의 행동'은 반드시 '사람을 존경한다.'는 특징을 지닙니다. 여기에서 석존의 과거세 모습인 불경보살이 어떻게 사람을 존경하는 삶의 자세를 관철했는지, 경문을 통해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석존은 불경품 첫머리에서 법화경을 비방하는 사람은 대죄의 과보를 받고, 법화경 때문에 비방당하는 사람은 육근청정(六根淸淨)의 공덕을 받는다는 원리를 설하고, 그 예로서 불경보살의 실천을 소개했습니다. 불경보살이 출현한 때는 위음왕불 멸후 상법시대, 다시 말해 증상만에 찬 비구가 큰 세력을 지니던 법멸(法滅)의 시대입니다. 이런 때에 불경보살이 증상만에 천 사중(四衆) 즉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모두 예배합니다. "나는 깊이 그대들을 존경하며, 감히 경멸하지 아니하느니라. 그 까닭은, 그대들은 모두 보살의 도를 행하여 마땅히 작불(作佛)할 수 있기 때문이니라."(법화경 557쪽) 이때 불경보살이 부른 말은 법화경이 개성불도(皆成佛道)라는 사상을 단적으로 축약한 말이며, 이른바 '이십사문자(二十四文字)의 법화경'이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불경보살의 실천은 시종일관 이렇게 말하며 모든 사람을 예배하는 실천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중은 악구매리(惡口罵詈) 하고 장목와석(杖木瓦石)으로 불경보살을 계속 박해했습니다. 불경보살은 그 박해를 참고 견딤으로써 기죄필이(基罪畢已) 하고 숙명을 전환했습니다. 불경보살은 세상을 떠날 때 허공에서 법화경을 상세히 설하는 부처의 말씀을 듣고 그 공덕으로 육근청정이라는 공덕을 받았고, 이백만억나유타의 수명을 연장하고 법화경을 계속 설했습니다. 그리고 성불해서 현재 석존이 되었습니다. 한편 불경보살을 박해한 사중은 그 죄에 따라 천겁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커다란 고뇌를 받았은데, 그 죄를 마쳤을 때 다시 불경보살을 만나 교화(敎化)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사람을 존경하는 행동'을 철저히 하는 일은 숙명전환과 육근청정이라는 생명변혁을 낳는 힘입니다. 이 법화홍통이라는 행동을 평생 관철함으로써 성불이라는 근본적인 승리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는 철학을 끝까지 신해(信解)하는 '신념 어린 실천'입니다. 그리고 난을 극복하고 신념을 관철함으로써 자기 몸에 그 철학을 체현하고, 성불하는 '성불의 수행'이기도 합니다. 그뿐 아니라 박해자의 무명(無明)과 방법(謗法)에 찬 생명마저 혁혁히 비추며, 생명 깊이 내재하는 불성을 흔들어 움직이는 '중생을 구하는 투쟁'이기도 합니다. 요컨대 불경보살의 '사람을 존경하는 행동'은 '성불하는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한 인간이 성불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실천입니다. 이 '사람의 행동'을 설하지 않으면 만인성불도 수포가 됩니다. 그러므로 '교주석존이 출세의 본회'라고 합니다. 니치렌대성인도 일관되게 '사람을 존경하는 행동'을 실천하셨습니다. 어떤 악세에도 묘법에 대한 신(信)을 일으키고 관철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반드시 불성이 훈발합니다. 그 사람이 하는 행동에는 반드시 '사람을 존경한다.'는 근본적인 실천철학의 지혜가 맥동합니다. 엄하게 악을 책하는 대성인의 절복행도, 상대방을 염려하고 민중을 자애하며 국토의 안온을 바라는 실천입니다. 만인의 불성을 존경하는 까닭에서 연유한 파사현정(破邪顯正)입니다. 대성인의 절복은 '사람을 존경한다.'는 철학을 근저에 두고 있으며 또 그런 철학을 근저에 두고 있기에 악을 책합니다. 그런 점을 바탕으로 이 어서에서 하신 지도는 말법 악세에도 '사람을 존경하는' 행동을 표면으로 내세워야 할 때가 있음을 밝히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절복이라 해도 악을 책하는 일만은 아닙니다. 단호히 진실을 잘라 말하는 일도 절복입니다. '인간멸시' '생명경시'라는 불신과 불안이 소용돌이치는 말법에, 감연히 '인간존중' '생명존중'이라는 깃발을 내걸고 홀로 서는 일도 용감한 절복행입니다. 늘 확인하고 있듯이, 21세기를 맞은 세계에서 많은 인류적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인간'에 초점을 맞추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점은 각계 지식인을 비롯해 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과 철인(哲人) 정치가들의 공통적인 인식입니다. 문제는 '인간에게 잠재하는 무명(無明)이라는 생명을 어떻게 변혁하느냐.'입니다. '선(善)의 스크럼을 어떻게 구축하고 확대하며, 공생하는 인도적인 사회를 건설하느냐.'입니다. 국제창가학회(SGI)의 행동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대한 문명 간 대화와 종교 간 대화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모든 차이를 초월하고, 인종과 국경을 초월해 인간과 인간이 넓디넓게 교류하는 세게를 계속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런 창가의 기조를 이루는 철학이 법화경에서 설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자기 생명을 변혁하는 일에서 비롯한다는 '마음의 재'라는 철리입니다. 세계는 창가의 인간주의 철학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창가학회가 추진하는 인간혁명의 행동은 민중의 희망입니다. 드디어 대성인불법이 설하는 '사람의 행동'을 현실에서 행동하는 학회원의 성실함이 세계에서 신뢰받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끝) 전 세계 장년부를 비롯한 모든 동지 여러분이 직장과 인생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시기를 기원하며 ※ 다음호에는 <여설수행초>(상) (501쪽 1행 - 502쪽 9행) 강의가 실립니다. |